[백목련] 양승복 수필가

우리 집 작은 꽃밭에 가을이면 국화꽃이 해마다 거르지 않고 핀다. 한해는 국화꽃을 소담하게 피워 보려고 파릇할 때 두 번이나 싹을 잘랐다. 음달인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린 탓에 국화는 꽃 피우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가을 내내 기다림과 안타까움으로 지낸 적이 있다. 햇살을 뿌려 줄 수 있다면 여로에 담아 흠뻑 줄 텐데.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고 된서리를 맞고 말았으니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몇 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렇게 서로를 알지 못하고 지낼 수가 있나.


올해는 가지를 벌지 않더라고 자르지 않았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고개를 들고 하늘바라기 하는 국화 대궁을 모아 묶었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매던 국화들이 어우러져 꽃을 피웠다. 소담하지 않다. 길에 피어있는 야생화같이 소박하지만 그 모습도 마음에 든다.


가을엔 역시 국화다. 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거늘 소담한 것을 강요하다 해를 거르게 만들다니. 부질없는 욕심에 한 생명이 절정을 맛보지 못하고 시들고 말았다. 내 지나온 삶속에 이런 실수를 얼마나 많이 하며 살아왔을까. 내 잣대로 상대의 생각을 이리저리 간섭하며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오지랖일 뿐인데. 때로는 생각이 틀리다 하여 서로 얼굴을 붉힌 적도 있었을 것이고, 상대의 가슴에 생채기를 만들고 그 생채기가 쓰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일도 허다했을 것이다. 여백이 있으면 바람이 자유로워 좋고 다복하게 피어 있으면 소담하여 좋은 것을 말이다.

살아생전 내 어머니는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국화꽃을 품으로 감싸 안으셨다. 해질 무렵이면 어둠과 함께 찾아드는 시린 바람이 국화를 상하게 할까봐 어린아이 감싸듯이 도톰한 보자기로 싸맸다. 아침이면 안녕을 확인하고 맑은 햇살에 내 놓았다. 그 모습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늦게까지 초롱하게 피어있는 국화자랑을 동네사람들에게 하셨다. 생각해 보면 국화를 사랑한 사람은 아버지였던 거 같다.

어머니께서 자리 보존하시고는 국화꽃은 방안에 피었다. 아버지는 국화를 꺾꽂이 하여 화분에 옮겨 심고 여름 내내 정성을 드렸다. 먼 길 가시는 날이면 삼일에 한번 씩 물을 주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꽃을 피워 겨울에도 국화 향을 치매를 앓는 어머니께 바쳤다. 어머니는 지고지순한 분이었다. 나이도 어머니가 한 살 연상이셨으니 누이 같은 부인에게 투정을 부리신건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사건건 타박하시고 살갑게 대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께 치매를 앓는 중에도 물을 떠 다 드리면 당신 드시기 전에 두 손으로 아버지께 먼저 드리던 어머니. 그 마음을 뒤늦게 아셨는지 아버지는 십 여 년 동안 어머니 병 수발을 정성껏 하셨다.

아버지가 가꾼 국화 향이 방안 가득하고 도란도란 동서 문답을 하면서도 마음은 하나였을 두 분은 그렇게 노년을 사셨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 국화 화분을 방으로 들여 생명을 연장시키고 싶으셨던 그 마음을 그 뜻을 어머니는 아셨을 거다. 두 분은 평생을 살았어도 서로 알지 못했던 순간들을 뒤 늦게 알아가면서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어 의지하고 사랑했다.

내 마음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까닭인가. 마당에 피어 있는 국화꽃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마음이 보이니 말이다. 서로 서로 된서리 맞지 않도록 감싸 안으며 살아가야 하는데 세상은 너무 어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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