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지난 11월 11일에 관한 여러 소식을 접하다 보니 무척 길일(吉日)인 듯하다.

여러 기념일이 겹치는 날도 있지만, 이날처럼 기념일이 모여 있는 날은 없을 것이다. 기념일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창립 기념일’처럼 ‘축하하거나 기릴 만한 일이 있을 때 해마다 그 일이 있었던 날을 기억하는 날’이다.

1이라는 숫자 네 개가 나란히 선 모양새인 11월 11일은 날짜는 하나인데 부르는 명칭, 문패는 여럿이다. 농업인의 날(가래떡 데이),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젓가락 데이(젓가락의 날), 지체장애인의 날, 보행자의 날, 해군 창설 기념일, 레일 데이(코레일) 등이다. 또한 대구시는 매년 11월 11일을 ‘출산장려의 날’로 ‘11(둘)이 만나 11(둘) 이상 자녀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자’라는 의미로 2010년부터 지정해서 운영하고 있다니, 대구는 물론 대한민국의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난제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하나하나 바람직한 기념일은 더 발전시키고 계승해야 하겠지만, 특히 몇몇 기념일에 대해 알아보고 되새기고자 한다.

농업인의 날로 정해진 것은 11을 뜻하는 한자 ‘十一’을 합치면 흙‘토(土)’가 되기 때문이다. ‘빼빼로 데이’로 널리 알려졌지만, 빼빼로 대신 우리 쌀로 만든 길쭉한 가래떡을 나눠 먹자는 뜻에서 ‘가래떡 데이’도 생겨났다.

젓가락 데이(젓가락의 날)도 뜻깊고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밥상에 올라오는 것은 ‘수저’다. 수저는 숟가락을 뜻하는 ‘수분’, 젓가락을 의미하는 ‘저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몇 년 전, 필자가 청주시 1인 1책 지도를 할 때 어느 80대 노인의 말씀도 흥미롭다. “지금까지 80년 이상 ‘숫가락’인 줄 알았는데 ‘숟가락’이라니…….” ‘저’와 ‘가락’이 합쳐지며 사이시옷이 들어간 ‘젓가락’과 혼동하여 ‘숫가락’이라 잘못 쓰는 경우가 있지만, ‘술’이 ‘가락’과 함께 쓰일 때 [숟]으로 발음되어 ‘숟가락’으로 표기해야 맞는 표기이다.

전 세계에서 식사할 때 손을 쓰는 사람은 40%, 젓가락과 포크를 사용하는 사람은 각각 30% 정도라 한다. 젓가락에 대해 관련 서적 등으로 더 탐구해보니 그 역사는 유구(悠久)하다. 3,000여 년 전 중국 고대 은나라 때 상아(코끼리의 어금니)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청동으로 된 젓가락이 발견됐다. 현재 젓가락을 사용하는 국가는 아시아 지역에 대부분 몰려 있고, 그중에서도 한국·중국·일본 3국이 젓가락 사용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공예비엔날레로 명성을 떨치는 청주시는 2015년부터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정하고 젓가락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도자, 목칠, 섬유, 금속 등 공예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 국제 종합 예술 행사로 국내·외 공예를 한자리에 모아 2년에 한 번 개최되고 있다. 매회 세계 60여 개국, 3천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30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 규모·최고 수준의 공예비엔날레로 성장하여 무척 반갑다. 고대 철기문화의 발흥지이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주조한 인쇄 및 정보 혁명의 발흥지다운 청주이다.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정한 지역은 청주시이다. 젓가락을 주제로 젓가락 전시회와 학술대회, 젓가락 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전국 공예가들이 만든 수백여 점의 젓가락을 선보이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빨리 옮기는 이색 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청주시가 젓가락과 인연을 맺은 건 2015년 동아시아문화도시에 선정되면서다. 동아시아문화도시 사업은 한·중·일 3개국이 매년 1개 도시를 선정해 연간 문화교류를 진행한다. 당시 명예조직위원장을 맡았던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제안으로 숫자 ‘1’이 4번 겹치는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선포했다.

이 전 장관은 “젓가락에는 짝의 문화, 정(情)의 문화, 나눔과 배려의 문화, 생명교육과 스토리텔링 콘텐트가 함축돼 있다.”며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경쟁해 온 한·중·일 3국이 젓가락으로 하나 되고 한국인만의 창의성으로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고, 미래학자 엘빈토플러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이 21세기 정보화시대를 지배한다.”고 예언했다.

젓가락질을 하면 의학적으로 64개의 근육과 30여 개의 관절을 동시에 쓰게 되어, 두뇌 발달을 촉진하고 손과 머리와의 순환성도 키울 수 있다니…….

우리나라가 골프와 양궁 사격 강국이 되고, 반도체, 줄기세포, 복제 기술 등 미세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도 젓가락 사용이 밑바탕이 된 것이라니 11월 11일인 여러 기념일도 좋지만, 특히 젓가락과 ‘젓가락 데이’가 뜻깊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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