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공 쌍무문제 광범히 토의

헨리 키신저 美國(미국) 國務長官(국무장관)10() 북경에 도착한 直後(직후) 中共(중공) 首相(수상) 주은래와 두 차례의 非公式會談(비공식회담)을 가진데 이어 11日 下午(하오) 인민대회당에서 제1차 공식회담을 갖고 미·중공 쌍무문제를 비롯하여 중동사태, ·중공 양국의 對蘇關係(대소관계), 대만의 장래 및 월남사태 등 국제적 상호관심사를 協議(협의)했다.

이제까지 () 6()째 북경을 방문한 키신저 長官10日 下午 북경에 도착한 즉시 주은래와 1차 비공식회담을 가졌으며 환영만찬회에 뒤이어 또 한 차례의 非公式會談을 가졌고 만찬회에서는 가능한 () 조속히 ·中共 正式(공식) 外交關係(외교관계)가 수립되기를 熱望(열망)한다고 말했다.

11일 하오 있은 周恩來(주은래)-키신저 제1公式회담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發表(발표)는 없었지만 양측은 -中共 雙務(쌍무)문제들을 광범하게 토의함과 아울러 國際的(국제적) 상호 관심사를 협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北京(북경)美國 관리들은 키신저 長官이 만찬회에서 가능한한 조속한 時日(시일)내에 -中共 정식 修交(수교)가 이루어지기를 熱望한다고 한 發言(발언)은 이번 訪問(방문)을 결과로 -中共 정식 修交가 이루어질 것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强調(강조)했지만 일부 옵서버들은 그같은 키신저의 發言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키신저 長官訪問 기간 중 -中共 양측이 정식 修交를 달성하기 위한 어떤 형태의 합의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日程(일정)을 정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키신저 長官은 앞으로 周恩來와 적어도 2회의 會談을 더 가질 것으로 보이며 또한 中共 주석 毛澤東(모택동)을 방문, 會談할 것으로 보인다. <8840·19731113일자 1>

 

이번호엔 역사적 인물 둘을 만난다. ·중 관계 개선에 큰 획을 그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와 주은래(周恩來·저우언라이)가 그들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미국과 중국은 국교를 수립하고 오랜 기간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면서 중국몽일대일로를 앞세우며 동아시아 패권국으로서의 위치를 점해가자 현재는 첨예한 대립관계로 돌아섰다. 작용은 반작용을 동반하는 법, ·중의 수교로 인해 대만은 외교적 입지가 매우 좁아지게 됐다.

키신저는 1923527일 독일 퓌르트 출생한 미국의 유대계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다. 100살의 노장으로 지금도 대 중국 문제에 이따금 등장하고 있다. 1969~76년 안보문제 전문가로, 닉슨과 포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내는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닉슨 대통령에 의해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에 임명된 후, 중국, 소련, 베트남, 중동 등지에서 외교적 성공을 거뒀다. 소련과는 긴장완화정책을 추진했고, 중국 공산당 정권과의 미국 최초의 공식 접촉을 이끌어내며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시킨 점이 눈길을 끈다.

주은래(周恩來·저우언라이·1898~1976)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제1대 총리다.

시안 사건 당시 공산당 대표 자격으로 국공합작을 추진했으다. 마오쩌둥, 왕자샹과 함께 홍군의 최고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마오쩌둥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마오쩌둥의 충실한 오른팔이었다. 공산당 내 2인자로 군림하면서도, 권력에 욕심을 내지 않고 국가를 사랑한 정치가로 지금까지 많은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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