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가 먹통이 됐다. 세계 최고 디지털 강국이라는 명성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됐다.

지난 17일 오전 출근한 각 지자체 공무원들은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지방행정공통시스템 ‘시도새올’에 접속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업무 시스템 접속에 오류가 생기면서 공무원들의 행정 처리는 불가능해졌다. ‘정부24’ 홈페이지를 통한 주민등록·초본 발급 등도 막혔다. 일부 행정복지센터의 민원 업무 처리에도 지연을 빚었다.

사용자를 검증해 시스템 접속을 인증해 주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법원 인터넷등기소 일부 서비스도 중단됐다. 주민센터에서 부여한 확정일자 열람과 국토교통부 매매계약서 연계 서비스 등도 차질을 빚었다. 각종 거래·신고 등을 위해 증명 서류가 필요했던 시민들은 언제 시스템이 복구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국민들로선 큰 불편을 겪게 됐다.

그러나 정부 행정 전산망에 중대한 오류가 생겼음에도 시스템 복구는 제 때 이뤄지지 않았다. 추후 임시방편만 마련됐을 뿐이었다. 행안부는 복구는커녕 시스템 오류의 정확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민원 대란’이 시작된 지 9시간 만인 17일 오후 늦게야 민원 처리예정일을 소급해 적용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 외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더욱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편을 겪은 국민에게 행안부가 한마디 사과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사태 초기부터 무사안일·무책임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정부 차원의 사과는 행정망 불통 사태가 벌어진 지 24시간 만인 18일 오전 8시 30분에야 나왔다. 그것도 이상민 행안부장관이 아닌 한덕수 총리의 입장문을 통해서였다.

한 총리는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로 인해 공공기관의 대민 서비스가 중단돼 많은 국민께서 불편과 혼란을 겪으신 데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이 장관은 결국 미국 출장 중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다. 이 장관은 이날 저녁 8시 30분쯤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해 “지방행정정보시스템 장애 발생으로 지자체 민원실과 정부24에서 업무처리가 지연‧중단돼 국민께서 큰 불편을 겪으셨다.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원인으론 네트워크 분산 오류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IT업계에선 네트워크 중에서도 부하를 분산(로드 밸런싱)하는 네 번째 층(L4)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한꺼번에 요구사항이 몰릴 때 신호를 각 서버에 적절히 나눠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행안부의 이 같은 뒷북 대응이 비판받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이중적 태도’가 그것이다. 지난해 10월 15일 오후 경기 성남 판교의 SK C&C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카카오와 네이버 등의 서비스가 일시 중단됐을 때 카카오가 백업 문제 등으로 곧바로 복구를 하지 못하자 당시 정부는 카카오가 국가기반 인프라나 다름없다며 신속 복구를 하지 못한 업체에 대해 강한 비판을 했었다. 정부는 방송통신재난대응상황실을 꾸리고, 피해보상을 카카오 측에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가 된 입장에선 허둥대기만 했을 뿐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

번번이 입길에 오르는 행안부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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