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이희영 배재대 기초교육부 교수

필자는 축구를 좋아해서, 가끔 늦게까지 일하는 날에는 새벽에 진행되는 해외축구를 틀어 놓고는 한다. 최근 한국 출신의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어 그 시간이 매우 즐겁다. 멋진 골을 넣으며 환호하는 손흥민이나 이강인, 황희찬, 오현규나 조규성 등의 선수들의 모습에 함께 환호하기도 하고 아쉽게 역전패를 당하는 날은 괜히 마음이 쓰라리기도 한다.

여러 해외 축구 선수 중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선수는 김민재이다. 23/24시즌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에 이적한 그는 최근 14경기 연속 선발 풀타임을 소화했다. 어떤 날은 철벽 수비를 펼치며 무실점 경기를 펼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실점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계속 이야기가 되는 것은 선수의 혹사 논란이다. 말 그대로 괴물도 지칠법한 살인적인 경기 일정과 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월, 11월의 일정이 그러한데, 그는 3~4일 간격으로 경기를 치르면서 세계 각지를 이동하고 있다. 독일 뮌헨을 거점으로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위해 덴마크, 튀르키예를 다녀왔고, 매월 국가대표 경기를 위해 한국에 왔다. 10월에는 2만km 11월에는 2만 5천km를 이동하는 일정이다.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며 경기에 나서는 그에게 최근 일고 있는 혹사 논란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어떤 기자의 질문에 그는 간결하게 답했다. “벤치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대부분의 축구 선수들이 이렇게 이야기 했을 듯싶다고 생각했다. 클럽을 따라 이동하고 경기를 치르는 것이 축구선수로서의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이동과 경기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여러 이유로 당장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일 것이고, 축구선수로의 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생존했다. 그것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었다. 오래전 구석기인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했고, 국가가 만들어진 뒤에는 교역과 교류를 위해 산을 넘고 강과 바다를 건넜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사업가, 유학생, 스포츠 스타, 난민, 배낭 여행자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이동 중이고, 지구를 넘어 우주로도 나아가고 있다. 가상의 공간도 이제 못 갈 곳은 아니다.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구들은 인류 문명을 바꿔 놓았다. 오직 두 발로 걸어서 이동해야 했던 인간은 동물을 길들여 이동하기 시작했고, 바퀴를 발명하면서 본격적인 이동의 역사를 열었다. 더욱 빠르게 더욱 편안하게 더욱 멀리 이동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수레나 전차, 선박을 만들어냈다. 더 멀리 이동했고 더 큰 전쟁을 했다. 증기기관차를 만들며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비행기를 만들며 전 세계 어디든 하루면 갈 수 있는 세상을 열었다. 우주선을 타고 달에 다녀왔고, 머지않아 화성에도 다녀올 수 있는 세상을 우리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김민재의 이동 거리는 인류의 삶의 공간과 영역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실 김민재처럼 매달 수만km를 이동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김민재의 이동 거리를 신기하고 이상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가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동 가능 영역은 앞으로도 계속 넓어질 것이다. 인류는 더 많은 공간을 누비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모빌리티 혁명을 주목해야 한다. 과거, 어린이들의 상상화에서나 보던 무인자동차나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이젠 현실의 이야기가 되었다. 자율주행기술의 보편화는 인류의 이동의 역사를 다시 한 번 혁신할 것으로, 가상공간의 일상화는 인류의 공간 개념을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 때의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의 어린이들이 그리는 상상화에 담긴 미래 문명이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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