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성종실록’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관찰사 이윤인의 아내 홍씨는 부친상을 당하여 산소 옆에서 여묘하면서 조석으로 친히 치전하고 항상 슬프게 울면서 우울해하였으며, 집에 두 번이나 불이 났는데 불길을 무릅쓰고 신주를 안고 나왔다. 제철 음식과 새로운 음식은 반드시 먼저 바친 후 먹었으며 종신토록 지키는 바를 변하지 않았다. 이에 정문하고 그 자손에게 벼슬을 주어 후인에 장려했다.”

효도를 권장하던 시대에도 부친상을 당한 부인 홍씨의 애절한 행실은 돋보여 이를 나라에서 표창했다는 내용이다.

우울증은 우울장애라고도 불리며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한다. 다양한 인지 장애 및 정신적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하기 어렵게 한다. 통상 불면증과 불안 장애를 동반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하기 쉬우며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다르게 개인 의지로 이겨내기 어렵다.

미국이나 서구 등 선진국은 우울증 평생 유병률이 개발도상국 등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우리나라도 지난 세기에는 유병률이 낮았으나 선진국에 진입한 후 서구 국가들을 추월할 정도로 매우 높아졌다. 예전에는 귀인들만 앓는 질환이었으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보편화되었다. 심지어 청소년의 우울증 유병률도 높아져 나이를 막론하고 우울증에 노출되고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신체적 질병으로 야기되기도 하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과다하여 발병되기도 한다. 내적인 원인도 있으며 환경적인 원인도 있다. 어떠한 원인이든 병이 깊어지면 스스로 이겨내기 어려워 대체로 약물치료에 의존한다. 양방에서 사용하는 약물은 일시적으로 증상을 억제하거나 감소하는 효과가 있으나 지속적인 신경 손상과 약물 의존으로 더욱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하거나 다른 질병을 야기하기 쉽다. 자살 충동은 다양한 부작용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앞서 밝혔듯이 우울증은 선진국병이다. 생활의 여유가 스트레스를 증폭한다.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기 바쁜 사람이나 짐승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60년대만 하여도 유아 사망이 매우 높았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스트레스는 어떠한 스트레스보다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를 가슴에 삭히고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남은 자식들을 키우기 바빴기 때문이다.

어떠한 질병도 그러하듯이 우울증도 자구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울감이 문득 들면 생활을 규칙적으로 영위하고 현실에 충실하며 여력이 있으면 미래를 준비하여 항상 몸을 바쁘게 해야 한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면 아무리 큰 스트레스라 하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게 된다. 신체적 질병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과다하여 독소가 축적되면 혼자 힘으로 우울증을 이겨내기 어렵다. 한의사의 진단에 따라 한약으로 질병을 치료하거나 독소를 제거하면 한결 우울증을 극복하기 쉽다.

근래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 우울증이나 신경질환의 경우, 놀이나 스포츠를 통하여 혈기를 발산하도록 해야 한다. 보더콜리 등 활동성이 강한 개를 집안에서 키우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듯이 청소년은 혈기가 방장하여 이를 발산해야 한다. 놀이나 스포츠는 신체를 단련할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다. 그럴 수 없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체질과 병증에 맞는 한약으로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교육제도를 개혁하여 청소년들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 교육 시스템은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

아픈 기억은 마음속에서 자란 종기와 같아서 반추할수록 상처가 깊어진다. 과거의 나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현실에 더욱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작은 성취라도 자주 느끼고 삶에 만족하면 과거의 아픈 기억은 퇴색되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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