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11월 10일 서원대 노마드융합연구센터는 제주대 인문과학연구소와 ‘치유와 돌봄의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하였다. 한국사회는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어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펜더믹 이후 우울증 확산 1위라는 안타까운 현실이 뒷받침하듯이 불안, 우울,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의식, 이기주의의 만연, 중독과 같은 인간 존엄성 상실의 위기가 있다.

한편, 제주는 4.3이라는 트라우마와 아직도 진행 중인 지역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이에 두 기관에서는 치유와 돌봄의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위험의 시대, 그 위기의 실제를 공유하고 대안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학술대회를 기획하여 여러 인문 분야 연구자들이 함께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인문학적 치유의 방향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총 6가지 주제 발표로 구성된 이번 학술대회 1부에서는 방선미(제주대)는 제주 출신 작가 현길언의 1960년대에서 1980년대 발표한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어린 시절 겪은 제주 4.3 사태의 혹독한 체험과 정신적 외상으로 인한 반복 강박이 만들어낸 반 오이디푸스의 경계와 회귀에 대해 소개하였고, 오어진(제주대) 역시 제주 출신의 작가 현기영의 ‘제주도우다’ 중심으로 잉여된 진실 탐구와 치유를 위한 서사를 소개하였다.

작품의 제목 ‘제주도우다’의 뜻 자체도 궁금증을 자아낼 만한데, 그 의미는 자의로 타의로 고향을 떠났던 제주도민이 귀향할 때 맥아더 사령부가 남과 북 중 어느 쪽으로 가겠는지 묻는 질문에 38선으로 남북이 갈라진 것을 알 리 없었던 그들은 “우리는 남조선도, 북조선도 아니고 제주도우다”라고 답한 것에서 차용한 것이라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 가정 내에서 겪은 성폭력의 상처를 예술 활동을 통해 치유하고자 시도하는 과정에서 전위적인 슈팅 페인팅을 선보이고 이후 밝고 경쾌하고 자유롭고 풍만한 나나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니키 드 생팔의 작품과 아카데믹한 예술 규범에 갇히지 않은 정신병자나 어린 아이가 그린 날 것 그대로의 원시적인 그림에서 원초적인 생명력을 발견하여 이들 가공되지 않은 작품들을 ‘아르 브뤼’라고 명명하며 위대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장 뒤뷔페의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을 통해 품어내는 상처와 치유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2부에서 김맹하(제주대)는 치유의 연극으로서의 재생이라는 주제로 사전 계획이나 타협, 조직적인 지시, 연출자의 지도나 지속적인 통제 장치 없이 진행자의 제안에 따라 객석의 관객 중에서 무대 위에 오른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연기자들이 전적으로 즉흥적으로 재연하고 악사가 즉흥 연주를 곁들이는 재생 연극playbacktheater의 치유성에 대해 소개하였다.

이어 이은숙(계명대)은 레진 드탕벨의 창조적 문학 치료 이론에 근거하여 문학 리텔링 글쓰기의 치유성에 대해 발표하였으며, 주현진(한남대)은 ‘기술의 세기’라고 불리는 현세기의 고독하고 우울한 인류를 치유 흔적을 문학사 속 다양한 작품들에서 찾고자 모색하며 문학적 서정에서 찾는 치유 인문학의 길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문학, 연극, 글쓰기, 그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개인의 삶 차원과 집단의 역사 차원에서 겪은 상처와 트라우마의 고백과 이러한 서사와 창작이, 그리고 이들 작품의 감상과 수용이 가져다주는 치유와 회복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가 앞으로 우리 사회 다양한 구성원들의 치유와 돌봄을 위한 인문학적 성찰의 활용방안 모색과 정책 제안에 작은 영감과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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