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국악원의 직원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큰 마당으로 눈길이 지나간다. 명인들의 공연인가 보다. 따라 들어가 국악 앙상블 ‘호야’의 창단 연주회가 작은 마당에서 열린다는 안내문에 멈춘다. 검은 하늘에 퇴근 시간이 겹쳐 겨우 도착했지만 남편과 나란히 객석에 앉았다.

출연진들의 얼굴은 앳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들이 의기투합한 단체이다. 가야금, 해금, 대금, 피리, 아쟁, 타악, 소리, 피아노를 기본으로 삼았다. 태평소와 소금은 상황에 따라 대금과 피리를 맡은 이가 연주한다. 진행이 재치 있고 통통 튀는 젊음이 객석까지 푸르러진다. 사회는 소리하는 이가 시작하여 피아노 연주자에게로 넘겨졌다가 다시 소리하는 이로 주고받으며 입담을 나눈다. 그들은 간간이 스텝이 되기도 하지만 즐기며 연주하는 모습은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해진다. 두근거리는 가슴은 부모와 관객의 자리를 오간다.

첫 무대는 ‘let me fly’로 남도 잡기인 새타령을 주제로 만들어진 곡이다. 악기들이 자신의 음색을 자랑하기도 하고 합창하듯이 조화를 이룬다. 첫 곡이다 보니 출연진과 악기의 개성을 잘 살려 부드럽고 감미롭게 표현한다. 한 마리 새가 날아들고 온갖 잡새와 풍년 새, 뭇 새 그리고 쑥국 새가 날아 들어오는 소리로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는 듯하다.

두 번째 곡은 영화 ‘사도’의 주제곡으로 사도세자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연주와 소리가 만나 사도의 애환과 절망이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그대의 마음 채우지 못해 참 많이도 눈물 흘렸소. 미안한 마음 두고 갑니다. 꽃이 피고 지듯이.’ 영화의 안타까운 장면들이 떠오르자 먹먹해진다.

이어지는 무대는 ‘상사화’, ‘마중’과 설장구 협주곡 ‘소나기’로 1부를 끝맺음한다. 2부를 기다리는 동안 바깥바람도 쏘이고 화장실도 다녀온다. 객석은 연주자들과 알음하여 온 이들이라 인연이 닿는 사람들이다. 서로 인사하느라 웃음꽃이다. 아이의 학교 선생님은 십 년 만에 만났음에도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남편과 나도 옛일이 생각이나 좀 전에 들은 음악만큼이나 흐뭇하다.

다음 무대는 어머니의 그릇된 사랑으로 아내를 잃게 되었다는 설화를 토대로 한 ‘달 각시’와 진도 씻김굿에 기반을 둔 ‘넋두리’,이다. 이어서 육자배기 토리의 진수인 남도잡기를 도시의 세련된 스타일로 국악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미라 도시’를 연주한다. 그리고 풍년가를 끝으로 마무리한다.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는 노래로 남도 민요 중 한 곡으로 기존의 풍년가를 재해석했다. 신이 난 객석은 따라 부르며 박수로 장단을 맞춘다. 제법 흥이 올랐는데 소리꾼은 마지막 인사를 한다. 아쉬운 객석에선 앵콜을 외친다. 무대 밖으로 나가려던 소리꾼은 끝나지 않는 요청에 다시 무대에 선다. 관객의 성원에 보답하고 저 ‘민요의 향연’을 펼친다.

로비에는 연주자들과 관객이 한데 어우러져 담소를 나눈다. 꽃다발을 받고 사진 촬영하는 그들을 바라본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다르게 흐른다.’라는 이론으로 밤(끝)이 오는 게 아쉬워 끝이 늦어지길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국악 앙상블 ‘호야’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등불이 비춰주길 기원한다.

길이 멀어 서둘러 나선다. 풍류 도시 ‘호야 1번지’에 축복의 눈이 내린다. 첫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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