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한·중·일 외교장관이 부산에서 4년 3개월 만에 회담했다. 그러나 향후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일정을 잡지 못하는 등 성과는 미흡했다. 이날 회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 쪽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한국 법원의 위안부 재판 결과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히 항의했던 것이 그것이다.

일본 외무성은 이날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2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국제법상 ‘주권면제 원칙’이 부정되고 원고의 소를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진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박 장관의 대응이 매우 부적절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박 장관이 위안부 판결과 관련해 어떤 의견을 일본에 밝혔느냐는 질문에 대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양 국가 간의 공식 합의로서 존중하고 있다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 법원의 결정에 일본이 유감을 표명했다는 것은 일본의 부적절한 한국 사법권 간섭이다. 그럼에도 그와 관련한 직접적인 답변없이 ‘동문서답’을 한 셈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이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관련 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종결됐다’고 선포한 바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같은 답변은 더욱 잘못된 것이었다. 박 장관의 답변이, 한국 법원의 판결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종결’된 것을 뒤집은 것이라고 읽힐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그동안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해왔던 점을 비춰 봐도 그렇다.

일본 정부를 대할 때마다 한국 정부가 왜 이렇게 당당하지 못하고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박 장관의 답변은 당연히 ‘한국 사법권에 대해 간섭해선 안 된다’는 것이어야 했다.

일본 측이 문제 삼고 나선 것은 서울고법의 판결이었다.

서울고법 민사33부는 지난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법원의 각하 판단을 취소하고, 청구 금액 전부를 일본 정부가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주권면제원칙(主權免除原則)’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을 말한다. 모든 국가는 평등한 주권을 가지고 있기에 상호 동의가 없는 이상 상대국의 권력 행위 등을 이유로 피고석에 강제할 수 없고 강제집행 또한 마찬가지로 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는 해당 관습법을 근거 삼아 소송에 무대응으로 일관했었다.

그러나 2012년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 주권면제와 강행규범 위반 사건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관할면제원칙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이지만, 이 원칙은 강행규범 위반과 같이 국가가 국제법상 의무적으로 지켜야하는 규범을 위반하는 경우엔 예외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안부 문제는 인권말살이요, 전쟁범죄였다. ‘국제법상 의무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예외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는’ 범주인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굴종적으로 이뤄진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