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 발레공연을 보았다. 연말이 되자 수없이 겹치는 일정표를 긴장해 가며 챙긴다. 자칫 깜빡 잊었을 경우 낭패가 되니 하루에도 여러 번 일정표를 확인한다. 토요일 같은 경우는 으레 한두 일정을 포기하거나 미뤄야 할 일들이 생긴다. 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어떤 순서로 매겨야 할지 난감하다. 나이가 삶의 속도가 된다는 말처럼 두 발로 칠십 킬로를 질주하듯,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때로는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발레공연 입장권을 선물 받았을 때, 이미 정해진 일정을 헤집어 보았다. 빠질 수 없는 방송대 시험, 등산모임, 반찬 봉사, 문학연찬회 시 낭송이 토요일 일정표에 올라와 있다. 등산을 빼고, 나머지 일정을 차례로 줄 세웠다. 시간상으로는 가능할 듯했다. 한두 번 보았던 호두까기 인형이지만, 국립발레단의 공연은 언제나 옳다. 이번에도 그랬다.

강수진 발레리나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는 호칭으로 수년 전 인터넷에 공유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은, 여기저기 물집이 잡히고, 뼈마디가 울퉁불퉁하여 설명을 듣지 않고 보면 너무 기괴하여 여자의 발가락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마치 들짐승의 뼈마디처럼 생긴 그 발끝으로 찬사를 자아내는 춤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무대 뒤에 숨겨졌던 혹독한 연습의 흔적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각자의 직업에 ‘발레리나의 발’을 투영시켰다. 필자 또한 직업상담 분야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런 노력의 흔적이 몸 어디에 남겨졌는지 반성하고 도전하게 했던, 인생의 뜨거운 시기를 이끌어 준 ‘가장 아름다운 발’이다.

흰 눈이 사뿐사뿐 내리는 무대로 시작하여 호두까기 인형을 둘러싼 생쥐들과의 전쟁, 그리고 이어지는 ‘눈송이 왈츠’ 부분에서는 찬탄이 흘러나왔다. 소리 없이 무대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속도, 우산을 돌리는 것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발레 스커트, 하늘로 솟구치듯 가볍게 들어 올려지는 발레리나의 깃털 같은 몸을 보며 숨죽여 참았던 호흡을 길게 내 뿜었다. 감동이다. 까치발로 온몸을 지탱하며 춤을 추는 그녀들에게서 상당한 건강미가 느껴졌다.

요즘 건강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 들을 따라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효과를 본 것은 한 발로 서거나 까치발로 다니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뒤꿈치를 들고 다니고,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탈 때는 굳이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서 있는 것, 그것도 한 발로 서 있는 것이 허벅지 근육 단련에 좋다는 것을 알고는 신호대기에서도 슬그머니 한발을 들고 균형을 맞추려고 발가락에 힘을 준다.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가볍고 우아한 발레리나의 몸짓은 엄청난 근력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근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연습을 이겨낸 그들의 아름다운 춤은 눈물겨웠다. 까치발로 날아오르듯, 다리의 근력으로 가뿐가뿐 걸어 다닐 나의 나중을 위해,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게 뒤꿈치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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