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겸의 세상바라보기] 김효겸 전 대원대 총장

2024 정부예산안을 심의하는 과정이 너무도 걱정스럽다. 국가예산은 국가의 장래와 미래를 결정짓는 바로미터다. 당해 연도의 부족한 부분을 다음연도에 더 보충해서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장기적 플랜이 있어야 한다. 미래 먹거리의 단초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국회의원이 해야 할 역할이고 사명이다. 이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국가예산안심의에 임하는 국회의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안을 둘러싼 거대 야당의 독주와 파행이 거듭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원전분야 예산 1814억 원을 삭감한 내년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을 단독 의결했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사업과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 무탄소 에너지 확산(CF100)을 위한 예산 등이 대상이 됐다. 반면에 원전 해체 R&D 사업은 거꾸로 256억 원 늘려 통과시켰다. 민주당의 이 같은 독주는 거대 야당의 일방적 횡포이자 정책의 논리조차 없는 자가당착적 결정이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메워줄 수 있는 대안으로 전 세계적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SMR 시장은 2040년까지 연간 146조원의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2028년을 목표로 개발을 시작한 우리의 i-SMR이 정쟁에 휘말려 고사하는 일이 생겨서는 결코 안 된다. 공은 이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 국가의 신기술 미래보다 진영논리를 앞세우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내년에 예정됐던 원전 지원 관련 예산이 줄면 원전 수출 등 정부 계획도 차질을 빚는다. 폴란드·체코 등에서 추진 중인 신규 원전 수출뿐 아니라 원전산업에 전 방위로 경고등이 들어오는 것이다. 특히 기존에 계약을 따낸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건설사업,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TRF) 건설사업 등의 추진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전 예산뿐 아니라 민주당은 최근 상임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단독처리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1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민주당은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청년 취업 관련 예산 2382억 원을 삭감한 안을 단독 의결했다. 특히 ‘윤석열표 예산’으로 불리던 청년 일 경험 지원 예산(1663억 원)과 ‘청년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 취업 지원’ 예산(706억 원)은 전액 삭감됐다.

국민의 힘은 대학생 ‘천원의 아침밥’ 사업 확대, 청년월세 한시 특별지원 등 청년 표를 공략하기 위한 방안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노인 임플란트 수를 2개에서 4개로 늘리고, 무릎관절 수술 지원자를 확대하는 ‘어르신 공약’도 쏟아냈다. 민주당은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선도 연구센터 지원예산 등을 1조 원 이상 깎고, 정부가 전액 삭감한 지역화폐 예산 7053억 원을 다시 되살렸다. 또 대폭 줄었던 새만금 관련 신 공항·고속도로·항만·철도 등 개발예산은 3700억 원 가까이 증액했다. 여야가 예산을 확대하면서 예산안 예비심사를 마친 9개 상임위 증액 규모만 9조 원에 육박한다. 17개 상임위 증액분을 합하면 15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정부 예산안 638조7000억 원의 2.3%나 되는 금액이다. 긴축예산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여야 의원 3명에 기획재정부 관계자 2명 등 5명만 참석해 ‘예산소소위’에서 656조9000억 원의 예산안을 ‘밀실 심사’로 최종 결정하게 되었다.

사상 최대 ‘세수 펑크’ 속 포퓰리즘 예산 증액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의 비판이 만만치 않다. 국가채무가 1100조 원, 연간 66조 원 적자인 상황에서 이러한 예산심의가 온당한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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