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바야흐로 김장철이고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다. 김치의 날이 있는지 몰랐는데 지난 11월 22일 아침, 라디오를 듣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관련 자료를 통해 알아보며 미처 몰랐던 많은 지혜를 알게 되어 무척 설레었다.

‘김치의 날’은 김치의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로, 11월 22일이다. 김치산업의 진흥과 김치 문화를 계승·발전하고, 국민에게 김치의 영양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하여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2020년 2월 11일 ‘김치산업 진흥법’ 제20조의2가 신설됨에 따라 정해졌다. 이날이 김치의 날로 정해진 것은 김치 소재 하나하나(11월)가 모여 22가지(22일)의 효능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라고 하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효능이 22가지 이상이고, 이 무렵이 김장철인 것에도 연유하는 것 같다.

김치는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으로 소금에 절인 채소에 젓갈과 고추·파·마늘 등 갖가지 양념을 버무려 담근 음식이다. 김치는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해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식품으로, 면역력 증진 및 바이러스 억제, 항산화 효과, 변비와 장염 및 대장암 예방, 콜레스테롤 및 동맥 경화 예방, 다이어트 효과, 항암효과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 김장할 때 찹쌀이나 멥쌀로 풀을 쑤어 넣는 것은 유익한 세균들의 번식(발효)을 위해서이고, 김치를 눌러 담는 것은 유산균들이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세균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2023 제4회 김치의 날’ 기념식이 22일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특히 올해는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해 특별 전시도 진행해서 더욱 뜻깊다.

김치는 케이팝(K-pop) 열풍과 함께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수출 대상국이 2011년 60개국에서 2022년 87개국으로 늘었다. 최근 5년간 수출액은 연평균 10%씩 증가했으며 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국·영국 등 해외 4개국 13개 지역에서도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지정할 만큼 김치는 세계인의 입맛을 돋우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필자의 집에서 김장을 한 것도 11월 22일이니 우연일까. 며칠 전부터 김장 재료를 사들이고, 당일 아침엔 절임배추를 실어 오고, 품앗이하는 몇 분의 도움을 받아 김장을 하고, 아들네 집으로 택배로 몇 상자 부치고……. 십여 년 전까지 배추를 사다 집에서 절이는 것에 비하면 좀 수월해졌어도 몸살 날 정도로 힘들다. 세상에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너무 힘들면 며느리가 직접 담그라고 해요.” “해줄 수 있을 때까지는 해줘야지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처럼 보답받지 못할지라도 주고만 싶은 내리사랑일까.

한국사에서 김장 김치에 대한 기록은 1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는 “속리산 법주사에는 커다란 돌항아리가 묻혀 있다”며 “신라 33대 성덕왕 19년(720년) 설치된 이 돌항아리는 김칫독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김장인데, 김장하지 않는 가정과 김치를 사 먹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니 걱정도 되고 격세지감이 든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의 ‘괴짜 생물 이야기’의 “풋내 나는 겉절이 인생이 아닌 농익은 김치 인생을 살아라. 그런데 김치가 제맛을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란 구절이 무척 교훈적이다. 맨 처음 죽음은 땅에서 배추가 뽑히는 것이고, 부엌칼이 통배추의 배를 허옇게 가를 때 또 한 번 죽는다. 소금에 절여지며 세 번째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되면서 네 번째로 죽고, 장독에 담기고 응달에 묻혀(지금은 김치냉장고) 다시 한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낼 수 있다.

김치처럼 그렇게 깊은 맛을 전하는 푹 익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김치의 날 덕분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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