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여러 매체에서 보도하였듯이 우리나라 의료인력은 여타 OECD 국가와 비교하여 태부족한 지 오래다.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노력은 여러 번 시도되었으나 번번이 좌절되었다. 양의사들의 격렬한 반대와 국민 보건을 볼모로 한 협박에 매번 굴복해왔다.

건강에 대한 잘못된 인식, 노인 인구 급증, 의료 수요를 유도하는 사회 제도 및 풍조 등으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나 공급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필수의료분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오히려 공급이 급속히 감소했다. 현 사태는 의대 정원을 몇백 명 늘린다고 해결되기 어렵다. 적어도 몇천 명의 증원이 필요한데 양의사의 반발을 무마하기 쉽지 않아 고심 중인 듯하다.

엄밀히 살펴보면 의료인력 부족은 필수의료과목과 낙후지역 의료에 편중되어 있다. 양의사 소득이 선진국을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과목 간의 소득 격차가 심하여 필수의료과목이 외면받은 지 오래다. 수도권 선호는 의료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역 불균형은 낙후지역 기피를 조장해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이 급증하고 있다. 균형발전은 정치인의 구두선에 지나지 않는다. 세종시 개발이 완료되어 쾌적한 생활과 문화환경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대통령실, 국회, 대법원 그리고 헌법재판소도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이 아무리 많이 확대되어도 필수의료와 지방 의료는 여전히 외면될 것이다.

필수의료 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해 수가 인상이나 리스크 감소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국민 부담만 가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실손보험, 선심성 의료지원, 호객행위에 불과한 건강검진, 방만한 운영 등은 건강보험재정 부실을 초래하여 올해도 건강보험료를 인상하였다. 필수의료과목 전문의들의 소득을 여타 인기 과목 수준으로 올리는 조치는 건강보험료의 추가 상승을 초래하여 국민 부담만 가중하고 가처분 소득의 감소로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필수의료와 지방 의료 활성화 방안 중 미국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정책을 참조할 만하다. 이번에 증원하는 의대 정원은 오로지 의료지역을 제한한 필수의료과목을 전공할 학생들로 별도로 선발하여 정부나 지자체에서 장학생으로 육성하는 방안이다. 해당 학생들이 전문의가 되면 일정 기간 정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낙후지역 의료기관에서 의무 근무하도록 하며 의무 근무가 끝난 후에도 해당 지자체 내에서만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이 방안은 기존 양의사들의 영역을 거의 침범하지 않아 반대 명분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으며, 형편이 어려운 우수한 학생들에게 전문의가 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지역 제한 필수의료인력을 확보하면서 건강관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의료 수요를 유도하는 제도를 혁파하면 향후 의료인 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단지 문제는 이들을 전문의로 육성하여 현장에 투입하는 데 10여 년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이미 필수의료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지역에 대하여는 별도의 중단기 대책이 필요하다.

중단기 대책으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한의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지역 제한 필수의료 전문의가 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의대생들은 충분한 자질을 지니고 있으며, 한의대 대부분 학과목이 양의학으로 구성되어 있어 충분한 지식을 습득한 상태다. 한의대 졸업생 몇백 명을 전문의 과정에서 수련시키면 3, 4년 내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 이는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의계에서도 환영할 만한 조치다. 양의사가 한약 처방과 침 치료를 겸하는 현실에서 한양방 일원화도 의료인력 부족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는 탁안이 될 수 있다.

로마제국이 갖가지 혜택을 주며 의료인 확보에 열성을 기울였던 것은 의학이 국방과 마찬가지로 국가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료인 공급 문제는 일부 직역의 이익과 상관없이 국가 안전과 국민 보건을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정부의 과감한 결단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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