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어느새 흰머리를 이고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살다 보니 아들딸 짝채워 보내고 나니 자연스럽게 할머니라는 선물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아직도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기억력이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다. 기록을 하지 않으면 생각이 안 나는 것이 다반사다. 핸드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쩌다 핸드폰 없이 있게 되면 좌불안석이다. 전화번호도 자식 전화번호 외에는 외우는 것이 거의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일정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해도 잊을 때가 종종 있다. 손녀를 보면서 육아일기를 쓰고 있는데 손녀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할 때가 있어, 집에 와서 쓰려고 하면 그 말이 생각이 안 난다.

다음날은 자구책으로 핸드폰에 간단하게 기록을 해 놓는다. 그런데 바로 쓰지 못하고 며칠 있다 쓸 때면 써놓은 것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각이 잘 안 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침에 모임을 가야 하는 날임을 확인했음에도 왜 안 오냐고 전화가 오기도 한다. 책을 읽고 좋은 말이 있어 기억하기 위해 메모해 놓고도 읽었던 책 제목이 잘 생각이 안 난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단어가 빨리 생각 안 나고, 사람 이름이 생각 안 나기 일쑤다.

서울에서 시 낭송을 하는 친구에게 배우고 싶어도 멀어서 못 했는데 코로나 덕분에 줌으로 수업을 할 수 있어 3년째 배우고 있다. 좋은 시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그동안 배운 시가 150 여 편 되는데 이중에는 학교 때 배운 시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도 많다. 작년부터는 줌 수업을 하는 회원들이 서울서 발표회를 하고 있다. 올해도 12월에 할 예정이다. 발표회 날 애송시 한편을 낭송해야 하는데 외워지지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외워보려 하지만 마음같이 안 된다. 다 암송 한 것 같아 눈을 감고 외우려 하면 생각이 안 나고 멍하기만 하다. 나중에는 화까지 난다.

이제 기억력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닌가 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며칠째 매달리며 외워보아도 생각 안 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 보니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친구 하나는 걱정이 되어 병원에 가서 머리 사진을 찍어 봤는데 별 이상이 없다며 노화현상이라고 했단다.

너무 바쁘게만 살아서 기억력이 떨어졌을까 하는 생각에 2년 넘게 배우던 손 글씨도 그만 두었다. 바쁘다는 것은 중요한 신호란다. 주변 사람들이 다가오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란다. 바쁘게 살다보면 정말로 잘못된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방치하게 된다고도 했다.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정신을 차리라는 신호란다. 적절한 수면, 식습관과 운동 등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70이라는 나이가 멀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자연스러운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덜어내고, 배우고 싶은 마음과 조급함도 내려놓고, 여유롭고 느긋한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는 늙어가는 것이 아닌, 조금씩 익어갈 수 있는 삶을 연습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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