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아동문학가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우리를 사랑할까요?'란 초등학교 시험에서 '그러게 말입니다(Tell me about it)'라는 챗봇GPT도 울고 갈 희한한 답을 썼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고령화 문제가 뻐꾸기 소리보다 몇 배 구슬프게 저민다.

인류역사 초유의 장수시대다. 인간 수명이 60~70세 때는 별 문제 아니었지만 인구 구조부터 노인 중심 재편으로 글로벌 표준화에 들었다. 퇴직 후, 대부분 30~40년 동안 뚜렷한 목표나 활동 없는 허송세월은 사회·국가적으로도 갈등과 리스크(risk) 요소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전반기 그림은 끊어지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까 노을빛과 어스름으로 섞일 뿐이다. 노후에 맞딱 들일 준비와 학습 부족에서다. 그냥 개탄하고 주저앉을수록 초라한 곱씹어 봐야 할 경고다.

◇후반기 근육

살다 살다 별 희한한 꼴도 본다. 최근 노인 학대와 가혹행위, 살인까지 험악한 뉴스를 접힐 때마다 사람인 게 부끄럽다. 정서·신체·경제적 학대, 방임 순으로 유형은 꽤 여러 가지다. 아들 며느리에게 집착하는 부모 심정은 이해하나 헐값으로 집과 전답까지 처분하고 2,3세대가 합친 경우, 해 넘어갈 시각을 기다리며 종일 공원 의자에 달라붙은 노인들이 흉물로 비쳐진다. 출근한 자식들 눈치 보느라 맘대로 집을 들어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홧김에 불쑥 맞섰다간 정말 국물도 없다 등등... 분노와 혼란을 부추긴 "자식 용서해 달라"며 애걸하니 오히려 목이 메인다. 아이러니 한 건 훨씬 경미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가정사조차 싸잡아 이의 있는 고발로 드러난다.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떠도는 목선 표류랄까. 너무 저리다.

마침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지난달 20일, 노인문제 해결을 논의할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그 부제도 거창하다. '노년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다. 노인들이 축적된 경험과 지혜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면, 국가 경쟁력 차원의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나이 들어도 꼿꼿한 노인, ‘주제파악’과 ‘분수’를 아는 일까지 노년의 숙련된 미래이며 감칠 맛 밴 오페라다. 지속적으로 자기를 달궈 건강 근육을 키우는 게 우선 순위다.

◇품위 있는 연륜

‘늙는 것'과 '나이 값'은 별개 과제다. 품위 있는 '연륜' 이야말로 인생의 최종 바람일 터, '노미(老美)'의 간절함을 잊을까 두렵다. 고백컨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이승을 등지는 것을 보면 소스라친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다. 서글프지만 현실을 어쩌랴. 지혜의 상징인 부엉이도 늘그막에야 날개를 편다. 하물며 인생 피날레(finale)를 어떻게 그려야 하나.

특히 딴죽걸기엔 곧잘 나서면서 멀미나게 해먹은 국회의원 나리들 "여기는 내 땅" 등기권자처럼 험지와 물갈이 혁신안에 무조건 도리질 아닌가. 자기중심 자기욕망에만 집착한다면 여유 사랑 행복 같은 소중한 가치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 고령사회가 미래발전 동력으로 꼽히려면 그에 따른 맞춤형산업과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수인데 벌써 노인돌봄비가 재정 시한폭탄 순위다.

그렇다 치고 노인 출입을 제한한 ‘노시니어존(노인 출입 금지) 카페’는 무슨 억하(抑何)심정일까? 내용인 즉,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7시간 동안 시끌벅적 했었다니 말문이 막힌다. 100세 할머니 할아버지도 노인다울 때 비로소 어르신으로 대접 받는다. ’그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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