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한때는 플래카드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포스터가 거리에 총총히 나붙은 때가 있었다.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2.0%라면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면 걱정이 태산이었다.

인구밀도가 높고 좁은 면적을 가진 우리나라 사정을 생각하면, 인구증가는 식량 수급 등의 어려움은 물론 구조적 가난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세대 만에 후진국이 중진국으로, 다음 한 세대 만에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것이 우리나라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형태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가족계획정책이 성공한 정책으로 남은 건 좋지만,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구조의 승자독식 사회와 함께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가족계획에 나라의 사활을 걸어야 했다. 이때 등장한 표어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 된다는 것이다. 부부가 두 명의 아기를 낳으면 수명증가에 따라 인구가 늘어난다 해도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감안하면 대충 총인구는 감소 없이 유지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후에도 매년 출산율이 역사상 최저를 기록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202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0.81명의 출산율을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기후위기에 의해 땅이 사라지는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인구 감소는 경제성장의 하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출산율이다.

이미 앞선 정권에서도 다양한 출산 정책을 시도해 왔지만 출산율 감소의 거센 물결은 물리치지 못했다.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는 단적인 정책은 출산율 증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기를 낳기만 하면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키워주는, 생애주기 전반을 관통하는 장기 대책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연금지급 불가능과 같은 대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정부의 대책 마련이 촉구된다. 우리는 작년에 출산율 0.78명으로 전례 없는 초저출산 국가에 진입했다. 출산율이 하락할 경우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에서 제일 먼저 인구 감소로 소멸하는 나라가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돼가고 있다.

비혼·저출산으로 인한 ‘축소사회’ 위기는 한국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노동인구 부족으로 7년 뒤인 2030년에는결혼식장, 어린이집 등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급 학교의 졸업생 수도 감소해 졸업앨범을 만들 때 학생 개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세계 최악의 출산율이 장기간 지속 되면서 ‘저출산 문제는 백약이 무효’란 생각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조만간 0.6명대까지 하락한다면 사회의 붕괴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것이다.

위험신호는 출생아수와 혼인건수, 인구 자연감소 등 인구 관련 전 분야에서 감지된다. 출생아수가 사망자수 아래로 떨어지면서 큰일이다. 인구 자연감소는 2019년 11월 이후 47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출산율 하락은 심각한 인구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은 지난해 총인구(1억 2300만명)의 0.6%인 80만명이 자연 감소했다.

인구재앙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2017년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은 집단자살하는 사회 같다”는 극단적 표현으로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한 바 있다.

저출산과 인구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국가적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저출산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빠르게 하락하는 출산율 추세를 아무쪼록 실효성 있는 방안을 찾아 조속히 강구되길 바란다.

출산은 거룩한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더욱더 거룩한 것이다. 내 유전자를 가진 누군가가 영원히 지구라는 별에서 대를 이어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경이적인 일인가. 생명 앞에서는 어떤 이론도, 어떤 경제적 실리도 따지지 말아야 한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싼 것이다.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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