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눈] 임명옥 우송대학교 교수

가끔 한자를 보면서, 이 글자를 처음 만든 사람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는 취미가 있다. 어미 모(母) 글자는 여자 여(女)에 두 점이 더해져 만들어진 글자이다. 두 점은 엄마의 젖가슴을 표시한 것이리라. 그리고, 어미 모(母) 위에 사람 인(人)을 놓아 ‘늘, 항상, 영원하다’는 뜻인 매양 매(每)자를 만들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간절한 분이 내 어머니요. 침 튀겨가며 부풀려서 내 자랑을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 분도 내 어머니이다. 매(每)자를 보면 수고하는 엄마가 보인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했던 글자가 있었다. 바로 가르칠 교(敎)자다. 이 글자는 효도 효(孝) 옆에 칠 복(攵)자가 있다.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막대기로 때려가며 가르치는 모습이 연상된다. 효가 아닌, 마땅히 배워야 할 다른 것을 가르치기 위한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여하간 오른손으로 막대기를 잡은 복(攴)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교(敎)자가 달리 보이는 일이 있었다. 외국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내용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학생은 겁을 먹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정도가 심해서 식은땀을 흘리고 호흡이 불편할 정도였다.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를 갔고, 매일 밤 이불속에서 무서워 떨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군대 입대는 학생이 대학을 들어가지 못하자 아버지가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단다.

필자는 학생을 다독여 기숙사로 돌려보낸 후, 이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했다. 두려운 눈빛을 한 건장한 청년을 어떻게든 잘 가르치고 싶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그 가르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두려운 기억에서 빠져나와 자신감 뿜뿜 넘치게 사는 방법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생각했다. 동시에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도 자문해 보았다. 긴 한숨이 나왔다. 누구를 가르칠 만큼이 아니었다.

다음날 교실로 가보니 그 학생이 한국어 연수를 포기하겠단다. 말릴 틈도 없이 학생은 바로 본국으로 돌아갔다. 교(敎)자를 찬찬히 다시 보았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남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나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가르칠 내용을 수없이 반복해서 내가 습득(習得), 체득(體得), 체화(體化)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게으른, 가끔은 게을러터진 내 육신을, 안일함을 쫓는 본능을 교정할 수 있는 회초리가 필요하다. 교(敎)자의 대상을 타인만이 아닌 나로 놓고, 옳은 것이 몸에 착 붙게 습관을 만들어야 함을 생각하니 교(敎)자 의 회초리가 덜 불편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제일 잘 가르치고 싶은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다. 나를 가르치는 길에 나태함이 쌓여서 흉물이 되지 않도록, 교(敎)자를 큼직하게 써서 눈 돌리면 보이는 곳에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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