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곽의영 전 충청대 교수

서울 양천구에 돼지고기, 소고기처럼 무게를 달아 책을 파는 헌책방이 있다. 이곳에선 특유의 방식으로 책의 내용에 상관없이 무게를 달아 판다고 한다. 어쩌면 이는 우리 사회가 의미 있게 공유(共有)해야 할 독서(讀書)의 가치론(價値論)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릇 독서는 일용(日用)할 정신의 양식(糧食)이라 한다. 이러한 경구(警句)는 꾸준히 독서하면 새롭게 앎을 구성하여 사람됨을 갖추고, 인간을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정신의 기제(機制)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를 두고 인지심리학자들은 독서를 의미의 재구성(再構成) 과정으로 정의(定意)한다.

즉 독서는 지식과 지식, 지식과 경험, 지식과 사고(思考), 자아(自我)와 타자(他者)를 끊임없이 통합하여, 세계와 인간 그리고 앎을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독서야말로 의미와 가치가 내재된 정신적 활동으로, 자신의 가치관(價値觀) 정립에도 도움이 된다.

사실 누구나 삶의 여정(旅程)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가치관이 삶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려면, 여러 책을 통해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에 대한 인식(認識)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독서 생활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오늘날엔 각종 디지털 환경매체(인터넷, 휴대전화, 유튜브 영상 등)로 바뀌면서, 점점 책과 멀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숫자로 보여준다. 문체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 의하면, 2021년 현재 우리나라 성인 중 최근 1년 동안 종이책과 전자 책, 오디오 북을 한 권도 읽거나 들은 사람은 47.5%로, 2년 전에 비해 8.2% 줄었다. 이는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텍스트보다 영상 매체에 익숙한 현상이 이 같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일 때문에 혹은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면 시간이 남으면 모두가 책을 읽는가? 그렇지는 않다.

아니 그 시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독서보다는 유튜브나 다른 영상 플랫폼에 매달리는 모습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도 열심히 운동을 한다. 이는 바로 건강을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독서도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읽는 것이다.

모름지기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자신의 삶의 내용이 달라진다.

리더십 분야의 코치,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그의 책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에서 ‘시간 관리의 핵심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소중한 일을 먼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로 보아 우리는 가치 있는 시간으로 채워 가야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책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바야흐로 오늘날은 디지털 시대로, 독서보다는 디지털 미디어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런 매체는 즉흥적이고 자극적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휘발성(揮發性)이 높아 심층적(深層的) 사고력(思考力)을 키우거나 내용을 분석하기 어렵다.

물론 이런 매체들은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눈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와 청각 정보를 통해 빠르게 집중시켜, 단기 기억으로 남는다.

이에 비해 독서는 글을 읽는 행위로, 사물(事物)을 깊이 생각하고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간접 경험으로 세상의 가르침을 일깨워주고 삶의 지혜를 얻는다.

헤아려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너무나 거칠고 정신이 황폐화(荒廢化) 된 것도 독서 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도 독서하면서, 일찍이 로마의 정치인이자 저술가인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의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라는 언명(言明)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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