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이희영 배재대학교 기초교육부 교수

지난 주말 맥락과비평문학연구회 문학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주제는 ‘대전문학과 아방가르드의 지평’이었다. 아방가르드는 척후병을 뜻하는 군사용어로, 적과 싸울 때 본대 맨 앞에 있다가 적진 깊숙이 침투해서 적의 동태를 살피는 병사를 의미한다. 이들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누구보다 용감해야 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했다. 이는 아방가르드 예술가가 갖추어야 할 정신과 다르지 않다.

예술사에서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것을 따르지 않는’, ‘선구적인’, ‘실험적인’과 같은 수사로 설명된다.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작품으로는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 1917)’이 있다. 모트워크스 라는 회사가 제작한 공산품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한 것인데, 이 작품이 발표된 이후 예술계에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쟁을 일어났다. 말 그대로 그간의 발상을 뒤집어엎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뒤샹은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변기에 새로운 정체성 하나를 부여하고는 ‘이것도 예술이다.’라고 선언한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전문학을 아방가르드로 읽을 수 있을까. 필자는 ‘아방가르드’라는 단어 안에는 ‘결국에는 아방가르드한 것이 아니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아방가르드 정신은 기성의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저항하여 이전에 없는 예술을 만들어 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작품도 권위적 작품이 되어 제도권 안에 정착하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작품이 더 이상 아방가르드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방가르드는 주변을 더 이상 주변이 아니게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서울 중심의 문학사에 대항하며 지역의 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아방가르드한 일이다. 그간 소외되며 주변부에 머물렀던 대전의 작가와 대전의 작품들을 공론의 장에 올려놓는 것, 이 자체가 대전이 그리고 대전의 작가들과 작품들이 주변이 아님을 선언하는 일이고, 나아가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전 지역에서 대전의 문학 연구자들이 대전의 작가와 대전의 문학 작품을 연구하는 일은 곧 대전이 더 이상 주변이 아니게 하는 일과 같다.

하지만 이러한 당위에도 불구하고 대전문학을 연구하는 일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작품의 발굴이 어렵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들은 정치적 이유로 문단에서 배제 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전문학의 ‘처음’을 새롭게 탐문하는 맥락과비평문학연구회의 움직임은 더욱 의미가 있다.

1946년 최초로 발간된 문예지 ‘동백’이나 1952년에 발간되어 현재까지도 무수한 역사를 이어온 ‘호서문학’으로 대표되던 서정문학 중심의 대전문학사 앞에 황린·임완빈·민병선·남철우·염인수 같은 잊힌 문인들을 호명하여 대전문학사의 처음을 다시 쓰는 일은, 대전 지역의 문학적 정체성을 새로이 부여하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전의 문학장이 지속적으로 논의되며 재구성되는 과정은 아방가르드 정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전의 문학 안에 녹아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삶의 기억이다. 이것들은 그 어떤 정치적이고 지역적인 편견이 없는 상태의 텍스트 읽기로 가능하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존재해 왔음이 증명될 것이고, 대전의 문학적 정체성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대전문학의 연구만큼 중요한 것은 대전문학 읽기 운동이다. 대전문학의 부지런한 읽기야 말로 문학의 경계를 지우고 지평을 넓히는 일이 될 것이다. 테두리 없는 무한의 영역에서 아방가르드 하게 대전문학을 읽고 천착하고 있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