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칼럼] 김진웅 수필가

일상생활에서 호칭 때문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호칭’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름 지어 부름. 또는 그 이름”이라고 나와 있듯이, 호칭(呼稱)이란 다른 사람이 부르는 명칭 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정의대로라면 이름과도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게 쓰이고 있다.

친척 얘기를 할 때도 자기 기준 호칭을 쓰기도 하고 듣는이(주로 자녀) 기준으로 맞춰주기도 하는데, 이게 섞이면 듣는 사람은 누가 누군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따라서 본인 기준에서 말을 하되, 듣는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듣는이의 기준에 맞는 호칭을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 아기 대신 강아지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가, 엄마가 ∼”란 말을 우연히 듣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받은 적도 있었으니…….

특히 노인(老人)이란 호칭은 필자가 젊었을 때만 해도 공공연히 쓰였을 정도로 늙은 사람을 일컫는다. 필자 역시 나이를 먹다 보니 마음은 젊어서인지 노인이란 말을 들었을 때 떨떠름한 것은 사실이다. 늙었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인지 은행이나 백화점, 식당 등에 가면 친근감을 강조한 ‘아버님’ ‘어머님’ ‘선생님’ ‘실버’ 등의 여러 호칭도 마뜩잖다.

노인복지법에서 ‘노인’을 ‘시니어’(senior)로 바꾸자는 개정안이 발의되자 한글 단체의 거센 항의가 있었다. 공공 기관 민원실 등에서는 그냥 이름 뒤에 ‘씨(氏)’를 붙이는 사무적 호칭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딱딱하긴 해도 불필요한 불만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필자 견해로는 ‘씨’보다는 ‘님’이 더 좋을 듯하다. 우리나라는 호칭에 좀 애매모호함이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인위적으로 급조한 느낌에 거부감도 생긴다.

통계청에 따르면, 내년부터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라니 한국 사람 다섯 명 중 한 명은 노인이다. 대체 뭐라 불러야 할까? 쉽고도 어려운 게 호칭이라 여겨진다.

필자가 정년퇴직한 무렵 예방주사를 맞으러 어느 병원에 가니 젊은 의사가 ‘○○○ 아저씨’라 불러서 나도 모르게 “아저씨가 뭡니까?” 하며 대꾸한 장면이 떠올라 멋쩍다. 41여 년간 선생님이란 호칭 속에 살다가 갑자기 적응을 못 한 탓일 거다. 그래서인지 그 후 다른 병원으로 다닌 것은 어떤 방어기제일까.

신문을 보니 경기도 의회가 65세 이상 도민을 ‘선배 시민’으로 명시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풍부한 경험을 쌓은 선배로서 사회 활동을 하시라’는 응원의 뜻에는 공감이 간다. 활기차게 산다며 ‘골든 에이지’ ‘신중년’도 쓴다. 일본은 60대를 ‘활발히 경륜을 펼칠 나이’라는 의미로 실년(實年), 그보다 나이 많으면 고년(高年)이라 하고, 중국은 60대를 장년(壯年), 70대를 존년(尊年)이라 부른다. 영미권에선 젊은(young)과 노인(old)을 합성한 ‘욜드(yold)’라는 단어도 등장했다니 노인 호칭이 어느 나라든 어렵기는 한가 보다.

1998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공모로 선정된 ‘어르신’은 가장 흔한 대용어였다. ‘노인’보다 ‘어르신’이 무난한 듯한데, 이 또한 반발에 부딪힌다. 65세 이상 경로 우대 승객이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할 때마다 “어르신 건강하세요”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도록 하자 “늙었다고 망신 주는 거냐.”는 아이러니한 항의가 이어져 결국 한 달도 안 돼 안내 음성에서 ‘어르신’은 빠졌다니…….

지하철을 탈 때, 국립공원, 박물관 등에 무료 이용할 때마다 겸연쩍다. 젊은 층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노인 연령 상향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타당성을 알 것 같다. ‘65세=노인’은 1950년대 유엔(UN)이 고령 지표 산출을 위해 채택한 낡은 공식이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지난해 노인 기준 연령을 점진적으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노인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상향하고, 무임승차 등을 폐지한다면 ‘꼰대’ ‘연금충’(蟲) ‘틀딱충’ ‘할매미’ 등의 낯뜨거운 노인 비하 표현도 줄어들고 없어질까.

급속도로 사회가 변천하고, 세대 간 유대가 약해지면서 과거와 같은 ‘어른’으로서의 존재감도 희미해졌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청소년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어른들에게 질문했지만, 지금은 핸드폰에게 물어보는 상황이지 않은가.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노년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는 학문을 익히고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2000년 전에도 ‘노인 됐다고 은퇴할 생각 말고 늘 새것을 배워 세상과 지혜를 나누라’는 교훈을 노인들이 충실히 실행하여 귀감이 되어야 한다. 호칭이야 어떻든 어르신으로서 품위를 갖추며 바람직하게 공헌하는 데 힘쓰고, 젊은 세대는 지금의 노인 세대를 자기 미래의 모습이라고 여기며 존경하는 인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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