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옷깃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제법 차다. 온 산야 초목들이 나뭇잎들을 떨어내니 나뭇가지들이 앙상하다. 그러나 모두 떠난 빈자리가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다. 겨울은 침잠의 시간이다. 또 다른 시간의 기다림으로 내면을 채워가고 있기에.

지난 늦가을, 두고 가는 못다 한 정에 미련을 두었던가. 이별을 앞에 두고 먹먹해지는 마음에 사시나무는 밤새 떨었고 참나무는 온밤을 서걱거렸다. 가을은 이별의 시간이요 비워내는 시간이며 사색思索의 시간이다.

나무는 잎이 지기 전에 잎에 있는 영양소들을 줄기와 가지로 옮겨놓고 잎으로 향하는 수분공급을 차단한다. 그를 차단하기 위해 잎과 줄기를 연결하는 부위에 떨켜층을 형성하게 되면 잎은 자연스레 떨어지게 된다.

자연은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다. 낙엽 한 장에도 희생과 배려의 삶이 있었음을.

떨켜층을 만드는 것은 나무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준비하는 나무의 지혜요 자연의 섭리다. 자연계를 지배하는 원리와 법칙은 냉정하고 단호했다.

제 몸의 일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아린 마음을 삭여내느라 늦가을 단풍이 그리도 곱기만 했던가. 발 아래서 버석거리는 낙엽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마음이 허하고 시린데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은 더욱 차다.

가랑잎의 향기가 향긋하다. 시간의 흐름 속, 공허해지는 여백으로 시나브로 향기가 차오른다. 더불어 내 작은 육체도 깊은 호흡으로 자연의 향기를 품으려 애를 쓰고 있다. 자연이 아무런 대가 없이 내어주는 품에서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활짝 펴고 온몸의 세포를 늘여 긴 기지개를 켜본다. 발에 밟히는 낙엽의 노래는 가을이 읊어대는 한편의 삶이요 내게는 바람길이다.

바람길에서 긴 호흡으로 숨길을 튼다.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긴 시간을 돌아본다. 누군가의 글에서 눈앞이 하얘진다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의아해했었다.

어느 날 그 시간이 내게도 찾아왔다. 암 선고를 받던 날, 세상의 호흡이 멈추던 순간이다.

머릿속이 텅 비고 눈앞이 하얘졌다. 광활한 우주에 오직 홀로 서있는 듯, 눈앞의 모든 형상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백 상태였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어떤 형태나 물체, 색깔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두려움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내야만 했던 시간.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투쟁이 시작되던 순간을 색으로 표현하라면 하얀색이다.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느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 듯 정신없이 하루를 돌리다가 한없이 품어주는 자연의 시간 속에 서있다. 무중력 상태에 놓인 듯, 가랑잎 하나가 허공을 휘돌다가 낙하한다. 손을 뻗어 나뭇잎을 잡았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던 시간 속, 자신이듯 싶어서.

앙상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 가지 사이를 휘저으며 알 수 없는 언어를 쏟아내는 바람의 소리가 온 숲을 평안하게 해준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서있는 계절 언저리에 얹혀서 서정주님의 시 한 구절을 읊어본다.

우리 모두 치열한 하루가 아닌 오늘 하루쯤은 가벼운 하루이길 기대하면서.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