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매미가 선비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서진 시인 육운의 작은 시에 다다르게 된다.

시인은 ‘한선부’ 서문에서 매미의 입 아래 대롱에서 선비의 갓끈을 떠올리며 소소한 자연에서 길어낸 인문성찰과 심미적 상상력으로 매미가 문청렴검신(文淸廉儉信)의 다섯 가지 덕을 지닌 곤충이라고 보았다.

송대 문장가 구양수는 ‘명선부’에서 매미 소리가 음악의 오음의 자연스러움을 품고 있다고 하며 매미 소리에서 출발하여 만물의 울음을 논하고 인간의 문장론까지 확장해간다. 송대 사상가 주자는 벗 여조겸에게 보낸 안부편지에서 “요 며칠 매미 소리가 맑기가 더해갑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높은 풍격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며 매미소리를 들으며 선비의 풍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하여 매미에 선비의 덕을 덧입히는 문화적 상징을 이어간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미는 조선시대 청렴하고 깨끗한 생활을 한 공직자에게 부여하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인 청백리의 중요한 상징이 된다. 왕이 쓰는 익선관과 관료들의 관모에는 매미 날개 모양을 붙여 청렴하고 고결한 선비의 정신을 몸에 지니고 실천하도록 하였다.

연산군 때 시인 이행은 ‘매미’ 시에서 “너의 성품이 자못 고결하거니/누가 미천한 곤충이라 하리오./바람에 울자니 마음 유독 쓰리고/이슬만 먹고사니 배는 늘 주리네/사마귀의 도끼는 몰래 독을 품고/거미의 실은 포위 풀지 못하나니/몸뚱이 가지면 참으로 누가 되건만/이 동물이야 본래 삿된 마음 없어라.”라고 하여 매미에 청렴하고 고결한 선비의 품성을 투영하고 자신의 심정을 이입하기도 한다.

이황은 주자의 방대한 ‘주자대전’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편찬한 ‘주서절요’에 주자가 여조겸에게 쓴 위의 편지글을 넣게 되는데, ‘주서절요’가 널리 읽히게 되면서, 매미소리가 군자의 덕과 벗에 대한 그리움을 상기하는 매개로 자리잡게 된다.

실학자 홍대용은 영조 때 서장관이 된 숙부를 수행하여 북경에 갔을 때 사귄 중국의 벗 반정균에게 보낸 편지에서 “늦여름이 되니 매미소리가 더욱 맑고, 늘 평상복 입고 치건 쓰고 향산루에 한가히 앉아 마음 가는 대로 책들을 뒤적이며 읽노라면 즐거워 근심이 잊히고, 손때를 만지노라면 그 사람을 보는 듯하니, 이것이 조석으로 만난다는 것이겠지요.”라 하여 매미 소리를 특별히 선비의 맑은 덕과 우정을 상기시키는 매개로 표현하고 있다.

실학자 이덕무 또한 매미와 귤, 매화를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라 하여 ‘선귤당’을 당호로 짓기도 하고 ‘아정유고2’의 ‘11월 14일 술에 취해’ 시에서도 ‘내 마음 깨끗한 매미, 향기로운 귤 같으니, 나머지 번다한 일 나는 이미 잊었노라’[...]넓디넓은 천지간 초가에 살며/맑은 소리 고아하게 밤낮 연주하네.’라고 하여 매미를 본으로 삼아 맑고 깨끗한 군자의 성품을 기르고자 하였다.

이처럼 매미에 대한 한 시인의 인문 미학적 상상력은 글에서 글로 면면히 이어져 맑고 높은 군자의 인품과 덕을 나누는 벗과의 사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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