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보며] 이혜정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문학박사

예전부터 사회는 늘 무수히 많은 갈등들이 공존해왔다. 인류의 의식이 진화되면서 사회 갈등들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가져왔고, 지금은 지속적인 다양성 교육을 통해 과거 전체주의적 가치관에서 형성된 비정상적인 편견들을 바로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요즘 대학들이 구성원들의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제고하기 위해 관련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만 봐도 다양성이 이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육계에서도 이 흐름에 맞추어 다양성에 기반한 교육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고교학점제가 대표적인 일례일 것이다. 2020년부터 마이스터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시행되었고 2025년부터 전국 고등학교로 확대 시행될 예정인 고교학점제는 기존의 획일화된 교과과정을 탈피해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존중해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이다. 대학도 학과 중심적 학사운영시스템이 아닌 무학과 무전공제도, 자기설계전공제도를 도입하자는 분위기가 교육부의 '글로컬대학 30' 정책과 맞물려 더욱 무르익어 가고 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교육계가 이처럼 다양성 구현을 위한 개혁을 시도하는 와중에 실제 교육현장은 오히려 획일화 일변도이다. 한동안 이공계열 쏠림현상 심화로 인문학이 위기에 직면하는가 싶더니 지금은 의대 쏠림으로 이공계열마저 입지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발표한 대학의 의대증원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그 입지는 당분간 더욱 흔들릴 공산이 크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초등 의대 입시반이 열풍을 넘어 광풍의 수준이라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인류의 의식흐름은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교육현실은 왜 획일적일 수 밖에 없을까? 이 사회의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 모두 의학에 꽂혀 있기 때문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필자가 생각컨데 그 이유는 부모세대의 불안이 투영된 결과이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에서 그들의 불안감은 켜져만가고 그 불안감을 누구나 인정하는 지위를 통해 극복하려고 한다. 의사는 그들의 세속적 기준으로 볼 때 이미 최고의 경지에 있는 직업이고, 스스로는 여건이 안되니 자식들에게 그 진로를 강요하게 된다. 따라서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쏠림현상은 부모세대의 이 저열한 불안을 끊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획일화가 남긴 폐해는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 폐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받아들인 다양성이라는 의식적 진화을 우리는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 자식세대까지 볼모로 잡아두는 저열한 불안을 스스로 밀쳐내기 위해서라도 부모세대가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과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가 중국에 있을 때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孩子是无辜的。" 우리 말로 번역하면 '애들은 잘못이 없어'인데 칼럼을 쓰면서 자꾸 이 말이 귓전에 맴도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