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필자는 결코 유태인이 우수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교육에 열심이고 진실을 사랑하는 전통이 있으며 이와 같은 많은 업적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할 뿐이다. 

헝가리에 '다윗 슈바르츠'라는 유태인 목재상이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비행선에 대한 실험을 되풀이한 결과 드디어 알루미늄으로 선체를 만드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결론을 얻고 1890년에 실제로 비행선을 만들어 비행시키는데 성공했다.

1896년 프러시아 정부가 이 비행선에 눈을 돌려 정부 주최로 실험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이에 앞서 슈바르츠는 죽었다. 10개월 뒤에 프러시아 정부는 시험 비행을 행하였는데 어스트예일이라는 독일군의 장교가 조종하였다. 네 시간을 비행하던 비행선은 추락하였다. 그러나 조종사는 무사했다. 이 시험비행을 본 관객 가운데는 체페린 백작이 있었다. 그는 이 비행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곧 슈바르츠 부인을 찾아가 비행선에 관한 설계도와 특허를 샀다. 뒤에 체페린은 비행선의 대명사처럼 그 이름을 세상에 떨쳤지만 그 배후에는 한 유대인의 두뇌가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를 제일 먼저 띄우는데 성공한 것도 유대인이었다. 1891년 여름, 오토 릴리엔타일은 인간으로서는 제일 먼저 날개를 사용한 비행에 성공했다. 릴리엔타인은 글라이더를 만들고 많은 저서를 썼지만 1986년 활공시험을 하다가 추락되어 목숨까지 잃은 유태계의 독일인이다. 뒤에 라이프 형제가 기계를 사용한 비행기를 성공했지만 그들은 릴리엔타일의 업적을 토대로 하여 비행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리고 1919년에 헬리콥터를 발명한 것도 헨리 베를리너라는 미국 육군 항공대 항공사진 전문가인 유대인이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항공학과를 설치한 것은 뉴욕대학으로 이것은 유대인의 거부 구겐하임가(家)에 의해 설치된 것이다. 그러면 이번엔 전선, 전화의 계통을 살펴보자.  

전화를 발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벨이 아니다. 독일 프리디히돌프에 가면 필립 라이스의 동상이 있고 전화는 그가 발명 했다고 새겨져 있다. 가난한 빵집의 아들 필립 라이스는 1860년에 벨이 전화를 발명하기 15년 전에 이미 전화를 발명했던 것이다. 그가 만든 나무로 제작된 전화기는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라이스는 전화기에 '텔레포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텔레폰'의 어원이다. 

동의 합금을 사용한 해저 전선으로 장거리 전화를 가능하게 한 것도 유대인 라라르와이더였다. 그리고 유선전선은 1846년 영국의 유대인 존 루이스 리처드에 의하여 발명되었다. 또 전파를 발견한 것도 하인리히하츠라는 유대인이 있다. 미국의 RCA(미국 라디오 회사 1919년 설립)을 세운 데이비드 사노프가 유대인인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인류의 업적을 유대인들이 이룩했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기술과 사회과학의 발전에 있어 유대인의 공헌이 크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심리학의 프로이드, 경제, 역사, 정치의 컬 마르크스, 물리학의 아인슈타인은 오늘날 세계를 세운 건축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처음으로 빛을 비추어 인간의 정신 구조를 설명했다. 프로이드 제자들은 칼 구스타프 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유대인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