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비대위가 출범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6일 오후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었다. 취임 일성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그는 연설을 통해 싸워야 하고, 또 막아야 할 대상으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운동권 특권 세력을 언급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지만, 강도는 셌고 수위는 높았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 세력과 결탁해서 자기가 살기 위해서 나라 망치는 거 막아야 한다고, 그런 세상이 와서 동료 시민들이 고통받는 거 두고 보실 거냐고 말했다. 야당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이제 100일 남짓 다가온 총선에서 집토끼라도 잡으려는 판단으로 여겨진다. 보수층 결집을 통해 일전을 치를 각오로 비쳐진다.

총선은 전쟁이다. 각 정당으로선 비상시국이다. 더욱이 30%대 박스권에 갇혀버린 국민의힘으로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비대위가 세워졌고, 그가 선장의 키를 잡았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후원금이 늘었다고 한다. 한 비대위원장이 지명된 지난 21일부터 6일 만에 정당 국민 후원금이 5배 급증했다고 한다. 일종의 컨벤션 효과일 수도, 그에 대한 기대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매우 우려스럽다. 국민이 요구하고 하고 있는 좌표가 어디인지 알아야 했다. 좌표설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살피는 것이다. 국회의 역할은 그런 법안을 내놓는 것이다. 행위의 주체는 정부일 수밖에 없다. 국가를 흥하게 하거나 망하게 할 수 있는 주체가 정부라는 이야기다. 이태원 참사와 오송지하도 참사, 젬버리 사태,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등을 겪으면서 민심은 정부로부터 이반됐다. 여기에 김건희 특검이라는 악재까지 총선에 작용한다. 무엇을 봐도 여당으로선 참담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자성의 목소리부터 나왔어야 한다. 실책을 인정하고 대안을 제시했어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타개책이 그것이었다.

집토끼만 묶어두려 하지 않고 외연을 확장하려 했다면, 적어도 박근혜 벤치마킹정도는 필요했다. 20111219, 총선을 4개월 앞둔 시점에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된 박근혜의 첫 수락 연설은 집권 여당으로서 국민의 아픈 곳을 보지 못하고 삶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말이었다. 2011년 박근혜와 2023년 한동훈, 두 비대위원장은 똑같이 선민후사를 말하고 있지만 방식은 전혀 달랐다. 박근혜의 키워드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변화였고, 한동훈의 키워드는 야당과의 대결이었다.

그는 지역과 비례대표 모두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일면 솔선수범의 자세로 보인다. 그런데 영남 중진들은 한 위원장의 입장에선 그것이 무엇보다 두려운 칼날이다. TK 물갈이에 대한 선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총선 참패의 후과를 피하기 위해 미리 퇴로를 마련해 놓은 것 아니냐고 평가절하 한다. 속내가 무엇이든 대폭 물갈이된 보수 텃밭 TK엔 용핵관과 검핵관들이 낙하산 타고 내려올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건 쇄신이 아니라 학살로 기록될 수 있다.

한 위원장은 이제 정치인이다. ‘여의도 문법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그는 서초동 문법을 내놓는다. 그 둘의 충돌지점에선 협치가 실종된다. 상대는 적대세력이고 피의자와 같기 때문이다.

그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보수층을 살리는 것이 그가 걸어야 할 길이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태생적 한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윤석열 아바타라는 비판으로부터는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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