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이희영 배재대학교 기초교육부 교수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어느새 막바지이다. 대학은 겨울방학을 맞이했고, 학기 내 분주했던 교정은 고즈넉해졌다. 고요해진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본다. 세상 일을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로 양분하여 단순하게 생각하면 비율은 50:50이어야 하는데, 매년 그렇지가 않다. 2023년 올 한해도 참 쉽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몇 개의 사건이 금세 떠오른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자연재해들이다. 올해 2월 튀르키에에 진도 7.8에 이르는 강진이 발생해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말 그대로 찢어져 버린 땅과 무너진 건물,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자연 앞에서 인간 문명이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때,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 순간을 함께 이겨내려고 했던 세계의 연대이다. 생각해보면 인류는 언제나 연대로 위기를 극복해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사람이 무서운 순간들도 있었다. 신림역이나 서현역 등지에서 일어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나 부산의 돌려차기 사건 등은 우리 주변의 이름 모를 이웃을 두렵게 하는 사건이었다. 10월에 일어난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이나, 여전히 지속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전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성탄 전야에 들려온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소식은 특히 마음이 아팠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10월부터 2달 간 진행된 전쟁으로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을 만큼 민간인의 피해가 극심한 전쟁이다. 이에 저강도 전쟁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된 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공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날 하루 공격으로 25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과거 수많은 전쟁에도 성탄절이나 새해 가까이에는 잠시 총칼을 내려놓고 전쟁을 쉬어갔다는데, 예수가 태어난 지역에서 예수가 태어난 날에 들려온 비보에 잠시 심장이 철렁했다.

타국의 전쟁 소식을 들으면서, 휴전 중인 우리나라의 상황이 새삼 걱정스럽기도 했다. 어느 죽음에 합리적 이유가 있을 수 있겠냐만, 예기치 않은 죽음이 내 바로 앞에 도사리고 있는 느낌은 실로 등골이 서늘하다. 왜냐하면 죽음은 이런 전쟁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바로 이 칼럼을 쓰던 중에 지인에게 전달받은 뉴스 기사는 더욱 참담했다. 마약 사범으로 조사받던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유명 배우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다는 뉴스 보도. 사람 좋아 보이는 배우의 마약 소식에 마음이 내내 무겁던 차에 들린 이 비극적인 소식은 죽음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이 죽음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가. 죽음은 그저 죽음이다. 그렇기에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이다. 그 무엇도 사람의 목숨에 비할 바 없다는 평소의 생각은 이런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나를 더욱 울적하게 한다.

현대 사회는 ‘희망 자체가 불평등하게 분배된 곳’이라는 사라 아메드의 말처럼 세상은 무척이나 혹독하다. 평온한 삶을 사는 와중에도 늘 불안하고 두렵다. 나는 지금 아주 운 좋게 살아 있을 뿐이다.

1년을 돌아보는데, 이런 비극적인 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까닭은 나의 생 역시도 고단했기 때문이리라. 많은 이가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이런 한 해도 저물고 있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 과정에서 이 모든 비극들도 결국에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러니 새로이 시작하는 새해는 희망차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새해를 시작할 때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더욱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렇게 살다가 또 연말을 마주하면, 올해보단 덜 고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좀더 나은 한 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