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연말 문학회 모임에 갔다가 책을 또 한 아름 받아안고 왔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많이만 끌어안으면 그저 사람이 절로 되기라도 하는 듯 욕심을 또 부린 거다. 있는 것 다 소화도 못 시키면서 이것저것 한 입씩 베어 무는 어린애마냥 자꾸 다른 것에 넘실대는 걸 보면 사람 되기는 애저녁에 글러 먹었는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미욱한 사람을 일깨워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선생이었다. 어린애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선생님께 자식을 사람다운 어른으로 키워 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자율학습을 해야 한다. 책이 곧 선생님이다. 한때는 책방을 기웃거리며 선생님을 찾아다녔다. 없는 돈 쪼개서 모셔 오는 날이면 부자가 된 듯 흐뭇하던 시절, 선물이라도 받으면 더없이 기뻤던 내 젊은 날의 이야기가 꿈결처럼 아득하다.

결혼하고 아이 키우기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책 읽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매일매일 배달되는 일간신문 하나 뒤적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막내아들이 2학년쯤으로 기억된다. 엄마 생일선물이라며 조막손에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의 소설이다. 신통하기도 했지만 하도 놀라서 어떻게 이런 책을 사 올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간단했다. 서점에 가서 엄마가 볼 책 사러 왔다고 했더니 주인아줌마가 권해 주었단다. 결혼 후 처음으로 받은 귀한 책 선물이었다. 아직도 책장 한 가운데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귀하게 주고받던 선물, 그 책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넘쳐난다. 책 읽기가 활성화 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작가도, 책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물자가 풍요롭다. 모두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르면 어느 것을 줘도 입맛이 당길 리 없다. 맘만 먹으면 거저 빌려볼 수 있는 도서관도 많다. 휴대폰만 열면 어제 어디서고 마음껏 볼 수 있다. 널린 게 책이고 읽을거리, 볼거리다. 책은 선물에 속하지도 않는 것 같아 선물로 줘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많다.

오늘날 책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숨 탄 것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글을 쓰고 역사적 기록을 책으로 남긴다. 문득 책은 처음 어떻게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생각이 머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진흙 판에 문자를 새겨 넣고 불에 구워 만든 점토판 기록을 최초의 책으로 본다. 이후 이집트의 파피루스 두루마리, 양피지, 대나무 등에 기록을 하면서 책의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전해온다. Paper 단어의 어원을 보아도 그렇고, 책(册)이라는 글자를 보면 죽간을 편철하여 사용한 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외 갑골, 패엽경이 사용되었다.

이렇듯 책은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인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책의 발전은 종이를 발명하고부터이다. 105년경 중국의 채륜에 의해 종이가 발명되고 곧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 그 후 목판인쇄와 금속활자를 비롯하여 각종 인쇄기기를 통해 종이책의 혁명을 가져왔고 인류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하였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전자책, 오디오북까지 등장하여 책의 홍수 시대를 맞았다. 넘치는 만큼 책을 귀하게 접하던 정서도, 가치도 사라진듯하여 아쉬운 점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을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책이고, 가장 가치로운 것이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나를 좀 더 숙성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갑진년 1월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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