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양승복 수필가

여행을 하다보면 역사 속 인물들과 만나기도 하고 섬세하고도 찬란한 문화재에 빠지기도 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구석구석에 존재해서 알아가는 기쁨이 크다. 그 시절 주인공이 되어 감상 속에서 여행을 하면 동행자가 생긴 듯이 즐겁다.

선조들은 문살에 갖가지 꽃을 새겨 사시사철 꽃을 피우고 법당의 천정이나 닫집에 새와 고양이 물고기 등을 새겨 넣어 상징적이면서 해학적인 삶을 살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순리 속에서 지혜를 터득하는 삶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경주에 있는 남산에 올랐을 때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돌아서면 또 다른 문화재가 있고 또 있고, 산 전체가 문화재였다. 아름다운 산, 기묘한 절경, 절벽, 폭포 등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바위를 하나하나 손끝으로 빚어 산 전체를 문화재로 만든 곳은 남산뿐이 아닐까 싶다.

선조들의 미소를 보았고 비단같이 수려하게 흐르는 자비도 보았고 우람한 체격의 부처님도 보았다. 더러는 풍화작용에 형체가 희미해진 모습도 있었고 일제의 탄압으로 목이 잘려나간 부처상도 있었다. 아픈 과거사에 가슴이 먹먹해져 발걸음이 멈추어지기도 했다.

수없이 많은 부처상을 보면서 오래 전, 일본의 어느 절에서 만난 목조 반가사유상이 생각났다.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조각 작품으로,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살아있는 예술미의 극치’ 라고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얼굴 전체에 흐르는 부드럽고 야릇한 미소, 입술이 금방이라도 벌어지며 방긋 웃을 것 같기도 하고 새침하게 다시 다물어 버릴 것 같기도 한 모습이다.

인생무상을 느껴 고뇌하는 명상 중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들은 깊숙이 감추고 사진도 찍지 못하게 했다. 그 미소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인 것을 남의 나라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씁쓸했다. 그곳에 존재한다 해도 간직하지 못한 허전함과 아쉬움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게 했다.

역사의 한가운데 있는 불국사에서 새벽기도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가지를 정리하지 않고 뻗은 굵은 나무를 가운데 두고 그 사이사이에 나무를 잇대 메운 대웅전바닥이 너무나 기이했다. 촛불은 일렁일렁 춤을 추고, 목탁소리는 어둠을 열고, 필자는 대웅전 바닥을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전기가 통하듯 전율이 이는 것이 역사의 저 너머에 있는 사람이 손을 잡는 것 같았다. 숨결인 듯 울림이 느껴졌다. 낮에 보았던 많은 전각들에도 이야기가 있고 석탑에도, 범종에도 있었던 설화 같은 이야기들이 마루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사찰 전체가 문화재인 불국사는 대웅전바닥도, 심지어 담벼락을 쌓은 돌의 위치까지도 평범하지 않았다.

역사는 지나온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향기가 있고 선조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나 또한 흐르는 시간 속에 있어 지나고 나면 역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안성 칠장사에 있는 선조들의 이야기가 전소 될 위기에 있었다. 몇 년 전에는 내부 분란으로 내장사 대웅전을 홧김에 불태워 버리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천재지변으로 문화재가 사라지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그 엄청난 가치를 훼손할 만큼 절실한 명목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러한 사연들을 접하며, 내가 내 자신을 잊고 살까 두려워 순간순간 의식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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