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눈] 임명옥 우송대학교 교수

“여러분이 수업에 이렇게 집중을 못하는 걸 보니, 내가 못 가르치는 거지. 내가 학교를 떠날 때가 됐나보다.” 학기 말이 다 돼가는데도 수업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 많지 않아, 화가 나서 푸념이 불쑥 나와 버렸다. 뱉은 말 주워 담기는 늦은 거 같고, 허둥지둥 수업을 계속하려고 할 때, 수업 시간에 관심이 통 없던 몇몇 학생이 입은 뻥긋도 하지 않고, 오로지 손짓, 발짓, 눈짓 등 온몸으로 뭔가를 표현하는데, 신기하게도 금방 이해가 됐다.

“우리 잘못이에요. 가지 마세요.” 필자의 착각이었을까? 아니 학생들은 분명히 그렇게 표현했다. 수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으로 X, O 모양을 만들던 학생들을 생각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고, 그 순간 많이 미안한 감정이 훅하고 올라왔다.

충청일보 ‘교육의 눈’이라는 코너에 글을 쓸 거 같다고 했더니 “지금 아는 걸 전에 알았더라면 진짜 잘했을 텐데”라고 90세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초등학교에서 40여 년을 가르치시고, 성인 한글 교육을 10여 년 정도 하셨다. 성인 한글 교육을 하신 일을 평생 하신 일 중 가장 의미 있는 일로 꼽으신다. 필자는 아버지께 지금 마음으로 예전 교실로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여쭤봤다. 아버지는 대답을 바로 해주신다. “친절하게 해줄 거야. 설명해주고 또 설명해주고, 모르면 다시 또 설명해주고, 못한다고 하지 않고, 친절하게.”

그림을 잘 그려 졸업하면서 필자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간 학생, 노래를 좋아해 한국어 가사를 알파벳으로 발음을 써서 공연까지 한 학생, 필자가 컴퓨터 조작을 못 해서 쩔쩔매고 있으면 교단 앞으로 나와 후다닥 정리를 하고 들어간 학생 등 학생들의 재능은 다양하고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필자의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런 학생은 그냥 답답한 학생이 된다. 2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이런 실수를 해왔다.

처음에는 작정을 한다. 잘 못하면 잘 할 때까지, 맘 다치지 않게 잘 가르칠 거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작정한 대로 안 되는 때가 온다. 아버지도 60여 년을 가르치시고 깨달은 것을 필자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거지. 깨닫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은 또 얼마나 부지기수인가!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찾아보지만, 그냥 반성하고 다시 잘해보겠다고 결심하는 게 최선이다.

친(親)자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나무 옆에 서서 하염없이 자식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필자가 잠시 나무 옆에 서 있는 이가 되어 본다. 부모를 떠나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걸어가는 자식의 뒷모습을 보면서 바라고 바랄 것 같다. 뒷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한참을 서서 바랄 것이다. 속으로 수천 번 되뇔 것 같다. ‘잘 먹고 잘 자라, 어려움을 만나면 이겨낼 수 있게. 쉬고 싶을 땐, 아무 때나 오너라. 꼭’

누군가에게 친절(親切)하게 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만,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우선은 그것으로 마음이 평화롭고, 언젠가 충만한 때가 올 거라는 믿음은 있다. 아버지가 이야기를 마치면서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셨다. “학생에게 친절하게 하는 것은 잔정을 많이 주는 거야.” 2024년은 필자의 교육의 뜰에 잔정이 잔꽃 마냥 가득 피어, 그 경이로움에 감사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