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이희영 배재대학교 기초교육부 교수

18세기 이후 발명된 모빌리티 도구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속도와 거리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기차가, 자동차가, 비행기가 발명되고 상용화되면서 인간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범주가 이전과 달라진 것이다. 이 뿐 아니다. 꿈의 이동수단이라고 하는 하이퍼루프의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도 한다. 그때가 되면 해운대에서 살면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일이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모빌리티 도구는 끊임없이 발전하며,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중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자율주행자동차이다. 인공지능이 도로교통상황을 분석하고 그 데이터에 따라 자동으로 운행하는 자율주행자동차는 지난 몇 년 동안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크루즈 컨트롤, 사각 지대 알림, 차선 이탈 알림 등의 레벨1 수준의 운전자 보조 기술은 이미 자동차의 표준 규격이 되어가고 있고, 차선 유지, 속도 유지 등의 레벨2 수준의 주행 보조 기술 역시 적용 범주를 확대하고 있다.

이제 관건은 레벨3 수준의 조건부 자율주행 기술의 상용화이다. 이 수준은 운전자가 위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되는 단계로, 사실상 주행의 책임이 인간에서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단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벨 3 수준의 자율주행 자동차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기술의 개발과 더불어 여러 윤리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피할 수 없는 사고 상황을 직면할 경우를 가정해 보자. 다가오는 차량을 보지 못하고 갑자기 차도로 뛰어든 보행자가 있다. 안전하게 멈춰서 보행자를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보행자를 피하기 위해서는 오직 차량의 방향을 급격히 바꾸어야 하는데, 이 선택을 할 경우 차량은 도로의 벽에 부딪힐 것이 예상되고 그로 인해 탑승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자율주행자동차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 실제로 자율주행자동차라고 해서 모든 주행상황에서 마주할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때때로는 불가피한 피해를 감수하며 일부 충돌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결정은 자율주행자동차의 독자적 판단이 아니다. 자율주행자동차에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결정 기준이 알고리즘으로 입력되어 있을 것이고, 이 알고리즘 값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합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주행자동차의 사고 상황에서 발생하는 AI의 결정은 곧 그 사회 구성원들의 윤리의식의 바로미터이다.

이 순간 우리는 모두 딜레마에 빠진다. 탑승자와 보행자 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 다수와 소수 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 어린이와 노인 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 무법자와 준법자 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 이 질문을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보행자, 다수, 어린이, 준법자를 살리겠다고 응답한다. 하지만 과연 탑승자라고 해서, 소수라고 해서, 노인, 무법자라고 해서 조금더 위험한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도 되는가.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올바른 정답은 존재할 수 없다. 그저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변명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딜레마 상황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다. 오로지 사고 상황의 가능성을 줄이는 노력, 딜레마를 넘어서기 위한 사유, 그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윤리는 이분법적 대답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이어야 한다. 자율주행 자동차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고안하거나, 자율주행자동차의 제동장치 성능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방식의 보행 체계를 제안하는 것이 그 사례이다.

삶을 살다보면 누구나 어찌할 수 없는 딜레마 상황을 마주한다. 그때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이냐가 아니다. 그 딜레마를 벗어나 문제의 밖에서 진짜 문제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딜레마 상황에 숨어 있는 진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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