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정종학 수필가·시인·전 초평면장

계절 따라 아름답게 변하는 산이 좋아 등산을 즐겨왔다. 정상을 오르내리며 피할 수 없는 게 계곡이요, 소리길에 맑은 물이 돌에 부딪혀 소리치며 흐르고 있다. 그 흘러감 속에 숱한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우리의 삶도 마치 작은 옹달샘에서 시작하여 실개천을 지나 강물이 되어 흐르다가 끝내 바다가 되어 마무리되는 것 아닐까? 문명의 발원지는 모두 큰 강의 유역이다. 잠시 머물다 바다로 흐르며 새 희망과 용기를 품고 파도와 때에 맞추어 밀려오고 밀려나고 있다.

인생도 흐르는 강물처럼 굽이굽이 요동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포용하며 쉼 없이 흐른다. 슬픔이나 즐거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가면서 새로운 변화에 반응하며 살아가느라 희로애락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돌고 다시 돈다.

프랑스 철학자드 드빌레르는 "인생을 제대로 배우려면 바다로 가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내가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흘러가며 살아지는 것이다", "바다는 우리에게 삶을 빛내는 예술을 가르친다"고 했다. 깊이 새겨들을만한 하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한시라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것이니라! 이것만 깨어도 서운함과 원망, 이별과 죽음 등 그 무엇이든 연연하지 않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청룡의 해, 올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76개국에서 열리는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지구촌 인구의 절반이 넘는 42억 명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세계 각국의 정치 풍토와 민주주의 건강을 어떻게 반영하며 흘러갈지 관심이 커지는 대목이다. 위정자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 세대 간의 갈등이 분출하고 있다. 그들이 잔머리 굴리는 뉴스가 판치는 미디어 속의 여행자 누구나 흔들리기 십상이다. 올라가면 내려갈 때도 있는 법이다. 세상이 변하면 시류에 걸맞은 지혜와 행동이 필요하다.

젊음의 마당에 어른들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분위기가 가라앉는다고 한다. 퇴직 십 년 줄 곳 군정의 어떤 위원이란 명분으로 행정에 간여해 온 모든 역할이 지난 연말에 끝났다. 이 순간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사로잡히는 시점에 서 있다. 앞으로 난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할까? 내 삶의 한 지표를 지금 세워야 한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변화 없는 삶은 죽음과 동의어이다.

젊은이들과 어울린 동아리 등산을 되새겨본다. 많게는 두 자리 수 차이 나는 젊은 후배들과 어울림을 내려놓을 때로 여긴다. 산을 타다 헛디뎌 넘어질 수 있지만 산이 스스로 너울거리며 나를 흔들지는 않는다. 삶은 등산보다 항해에 가까움을 깨닫는다. 천천히 흐르는 삶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사람의 욕망은 한이 없다. 보이지 않는 바람은 언제 어디서나 끼어들기 마련이다. 흘러가는 물결처럼 인생을 거역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게 순리이다. 청룡의 해 모두가 좋은 기운을 타고 웃음의 물결로 번져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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