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지현 충북문화재단 행정지원팀장

한 달 전쯤 이른 새벽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25년 전 친구로부터의 메시지였는데 해외 대학에서 솔페지오와 음악 교수법을 가르치는 그녀가 수업 준비를 하다가 문득 내 생각이 났다며 직접 계이름으로 불러 믹싱한 음악 파일이었다.

코다이 졸탄(Kodaly Zoltan)이 작곡한, 2개 성부에 16마디 정도의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었다. 그녀가 보내준 그 짧은 선율은 잊고 있었던 기억들(낯선 땅, 낡은 건물 꼭대기 방, 피아노 앞에서 화음을 주고받으며 음악을 이야기하던 젊은 두 여인의 모습, 하루에도 몇 번씩 음악으로 기뻐하고 절망하던, 가난하지만 충만했던 20대의 시간들)을 소환했다.

그날 아침 우리는 오래전 서로의 기억을 떠올리며 메신저로 대화를 이어갔다. 짧은 대화 끝에 그녀는 “옛날에도 지금도 너는 나만큼이나 음악에 재능이 있어. 아니 모든 사람은 음악에 재능이 있어. 너나 그들보다 내가 더 경험이 많을 뿐이야”라며 이제 더 이상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는 나에게 음악을 놓지 말라고 당부했다.

코다이 졸탄(Kodaly Zoltan)은 헝가리 근대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자이자 민속음악자이고 음악교육자이자 철학자이다. 동료인 바르톡 빌라(Bartok Bela)와 함께 헝가리 민족 음악 요소를 찾아 민요를 채집하고 이를 현대화하였다. 또한 모국어와 친숙한 민요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목소리'를 이용한 합창 교육을 중심으로 현재까지도 활용되고 있는 독보적인 음악 교육 체계를 완성하였다.

코다이의 음악 교육 철학은 한 마디로 '음악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코다이는 음악에 재능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은 음악을 즐길 권리가 있으며 음악이 매일의 일과로서 경험되어야 하고 음악을 함으로써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악이나 예술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는 못 하지만 예술이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예술은 그 자체로 행복을 준다. 매일 공연을 보고 전시를 보는 일이 일상이 되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큰 공연장이나 미술관에 가지 못 하더라도 짧은 음악이, 무심히 걸려있는 이미지가, 누군가의 글귀가 팍팍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잠시 웃음 짓게 하고 위로를 주기도 한다. 예술은 당장 코앞의 문제를 해결하고 현실을 바꾸지는 못 하지만 잠시나마 현실의 무게를 잊게 하고 또 우리 마음의 운동장을 넓혀준다.

파블로 피카소는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나지만 문제는 그들이 자란 뒤에도 어떻게 예술성을 지키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인간은 예술가로 태어난다. 훈련과 교육을 통해서 노동자가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 예술성을 타고나지만 자라면서 사회와 직장에서,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기존의 가치와 규범 앞에서 그 본능을 숨기게 되고 서서히 원래의 나를 잊게 되는 것이다. 본성을 잃지 않기 위해, 내 안의 나였던 아이를 다시 발견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에 예술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허용하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전시장에 들르거나 접어두었던 악기 배우기와 서툰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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