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매미가 동아시아에서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선비정신의 상징이 된 것을 몇몇 시문에서 살펴보았다. 시문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옛 그림에서도 매미를 주요 소재로 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2016년 실학박물관 경기청백리 특별전에서 받아온 부채에도 육운의 매미 오덕 옆에 조선 후기 화가 조정규의 ‘매미’(22.x9.1cm) 그림이 곁들여 있었다. 옛 그림에서 매미는 단순히 자연물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선비의 정신의 상징으로 그림에 부각된 경우들이 많다. 김인관(金仁寬)이 그린 12폭의 ‘화훼초충화권축’에 실린 ‘유선도柳蟬圖’(지본담채, 115x17cm)에서 가로로 긴 화면 오른쪽 아래 굵은 버드나무 등걸로부터 움터 왼쪽 위 대각선으로 뻗은 가는 가지에서 늘어진 실가지의 버들잎 위에 살포시 앉아 있는 매미를 볼 수 있다.

도연명이 고향에 은거하며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집 주위에 심고 자신을 오류(五柳)선생이라 한 데서 버드나무도 은자의 맑고 고요한 삶에 연관되게 되었다. 옅게 채색되어 있는 실가지 버들잎 위에 얹어놓은 듯한 검은색 몸통과 투명한 날개의 매미는 높은 버드나무 위의 매미 소리(고류선성高柳蟬聲’)의 청량함으로 뜻 높은 선비 정신을 표현한다.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은 ‘송림한선松林寒蟬’(1742, 견본담채, 29.5x21.3cm, 간송미술관 소장)에서 화면 전체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소나무 한 가지와 그 위에 앉은 매미 한 마리만 남기고 담백하게 여백을 비워두고 있다. 소나무도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

화면 왼쪽 위편에서 오른쪽 대각선 아래로 늘어진 소나무 잔가지는 윗가지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멋스러운 마디의 꺾임과 함께 점점 가늘어지고 있으며 위, 아래 가지부분에 돋아난 푸른 솔잎들이 운치를 더한다. 매미를 사이에 두고 끊어진 듯 이어진 가느다란 가지 획에서 멋과 여유, 갇힘 없는 여백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화가는 이 한 가운데 빈 가지 위에 앉은 매미의 더듬이, 눈동자 안의 점, 다리, 등의 무늬와 몸통의 주름, 날개의 무늬까지 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여 강조함으로써 화가 자신의 내면과 선비적인 포부를 함께 담아내고자 한 듯하다.

심사정(沈師正, 1707~1769)도 매미를 소재로 한 그림을 여러 작품 그려 자신의 심정을 매미의 상징에 투영하였다. 증조부 때까지 명문이었으나 조부 때 집안이 몰락하여 과거로 뜻을 펼칠 꿈을 접고 평생 그림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자신의 신념과 뜻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심사정의 매미 그림 중 ‘유사명선柳査鳴蟬’(지본담채, 28x22.2cm, 간송미술관 소장)은 왼편 아래서 오른쪽 위 사선으로 뻗은 버드나무 등걸에 앉은 매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매미가 앉은 버드나무 등걸은 끝이 뚝 끊어져 있는데, 메마른 나무 등걸 옆으로 가는 사지가 뻗어 올라가고 있으며 연한 버들잎 새순이 돋아나 있어 꺾인 가지에서도 새 생명이 이어지는 희망이 느껴진다. 심사정의 버드나무 등걸에 앉은 매미의 모습에서 운명의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군자의 뜻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자 하는 신념이 느껴진다. 매미는 세월과 함께 맑고 청렴한 선비 정신문화 가치와 상징으로 여기까지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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