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학과 교수·브레인 편집장

새해가 되면 가장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작심삼일(作心三日)'. 그런데, '작심삼일'은 참으로 뇌과학적 용어다. ‘몸’이 빠졌기 때문이다. 마음만 제대로 세운다고 기존에 되지 않았던 행동이 갑작스럽게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몸은 부수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오늘날 현대 교육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지덕체(智德體)'는 맞는 것인가?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기둥에 새겨졌다는 유명한 말인 '너 자신을 알라'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은 2천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위력이 여전하며, 서양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된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역시 현대인들의 사상과 교육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진화론의 등장으로 신과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생물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등 인류 과학의 발달은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에 기반한 신체, 감정, 인지 사고체계에 대한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마음과 몸은 기능적으로 독립되어 있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인류 과학의 발달로 옛 문장이 되어버렸다. 400여 년이 지나 인간 뇌의 비밀을 탐구하는 뇌과학이 출현하고, 세계적인 신경과학자로 손꼽히는 안토니오 다마지오 박사가 펴낸 책의 제목은 ‘데카르트의 오류’였다.

또한, 20세기 생물학과 신경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성장 기제가 다른 동물과 확연히 다름을 보여주었다.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닐 만큼 성장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해진다. 열심히 스스로 기어야, 비로소 설 수 있고, 서야 걸을 수 있으며, 걸어야 뛰어다닐 수 있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걸음마는 두뇌 운동영역을 발달시키고, 소리를 내어 책을 읽으며 말을 배우는 동안에는 언어영역이 개발된다.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만지작거리는 동작들은 뇌 속에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손의 다양한 감각을 발달시킨다. 뇌 바깥으로부터의 자극이 해당 두뇌 영역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신경망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눈여겨볼 것은 신체, 정서, 인지 발달의 단계이다. 아기의 뇌가 자신의 몸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신체적 발달이 먼저이고, 다음이 자신의 몸 바깥의 대상과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정서적 발달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생명체와의 다양한 교류의 폭과 깊이가 정서 기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지막이 뇌의 가장 바깥쪽에 해당하는 인지 학습의 발달이다.

성인의 뇌가 되면 뇌 속에 새로운 길을 내는 것 보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걷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안정적이다. 산길을 가다 수풀이 우거진 길보다 선명하게 나 있는 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새롭게 맞닥뜨리는 상황 앞에서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먼저 작동하게 된다.

오늘날 인류 과학의 발달이 '인간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한 모든 것을 제시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함을 제시한다. 우리들은 아직도 마음만으로 무언가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얘기하고 있지는 않을까.

인간을 이해하려면 뇌를 알아야 하는 시대이며, 마음과 행동변화의 열쇠는 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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