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곽상현 선경세무법인 대표‧세무사

상속세제 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제 규모와 소득·자산 변화, 고령화 속도를 반영해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 최고세율과 과세표준 등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23년 째 그대로인 상속세 체제를 한번 건드릴 때가 됐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우리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우리보다 최고세율이 높은 곳은 일본(55%)뿐이다. 그뿐 아니라, 경영승계에 적용되는 20% 할증을 더하면 최고세율은 60%에 달한다. 징벌적 성격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인 것이다. 물론, 가업승계 때 상속세를 깎아주는 제도가 있지만, 대상이 제한적이고 요건이 까다로워 활용하는 사례가 드물다.

이러다 보니 국내 기업들은 상속세 부담에 경영권을 위협받거나 가업 승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30년이 넘은 중소기업 중에 대표가 60세 이상인 곳이 81%에 이르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매각·폐업을 고려한다고 한다.

상속세 개편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자연증세의 심화이다. 현행 상속세법상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 10억은 무조건적으로 공제받는다. 하지만 그동안 아파트 값이 꾸준하게 올라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모(피상속인)의 아파트가 9억에서 15억으로 오른 사람은 상속을 받으면 기본적인 공제만 받는 경우 8730만원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상속세 과세 대상에 해당되는 경우가 2000년 이후 22년간 피상속인은 1300명에서 1만9000명으로 15배, 상속세액은 5000억원에서 13조7000억원으로 27.4배 증가했다. 겨우 20년 남짓한 시간동안 상속세가 27배 이상 늘어난 데에는 세율 구간과 공제액에 인플레이션 보정이 없었던 이유가 크며, 세법에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대상자와 세 부담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높은 세 부담률이 후대 경제의 활력을 낮출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된 고(故) 김정주 넥슨 회장이 남긴 약 10조원의 재산에 대해 유족은 6조원 가량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넥슨의 지주사 NXC 지분 29.3%를 정부에 물납했다. 조세부담이 국내 1위 게임기업 경영권을 좌우할 수준의 주식을 시장에 내놓게 할 정도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상속세가 지닌 부의 재분배 취지보다 자본 이탈의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경총 조사에서 30~40대 벤처기업 창업자들 94%가 높은 상속세를 우려했다. 높은 상속세는 주식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기업 저평가)’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 부담이 커져 기업들이 주가 부양에 소극적이거나 낮은 주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주식이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상속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니므로 불로소득에 해당한다. 나아가 선택에 대한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투자수익과도 구분된다. 상속인은 상속재산에 대해 어떤 기여도, 선택도 하지 않았음에도 피상속인의 상속인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취득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공평과세 측면에서도 상속으로 인한 불로소득에 대해 세금이 부과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상속세는 거금을 한 번에 징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입장에서는 포기하기 싫은 세금이고, 부의 재분배로 인식하기 때문에 정치권 입장에서도 조절하기 쉽지 않은 세금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과세 완화가 대세이다. 이런 추세는 부자 특혜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 근로자와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장수 기업이 많을수록 일자리도 늘고 기업과 그 근로자가 내는 세금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불고 있는 상속세 개편 담론이 충분한 공론을 거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편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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