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벌써 2월이다. 1906년 2월, 청주 가덕 인차리에 걸출한 인물이 탄생했다.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 신창희 선생이다. 활동 당시 또 다른 이름은 신명호다. 3.1운동을 한 아버지 신규식과 어머니 김정숙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상하이로 망명한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숙부인 신건식 일가도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온 일가의 생활 자체가 항일 의식과 함께 했다.

그녀는 1920년, 아버지 신규식의 비서로 상해 임시정부 외교 업무를 맡고 있던 민필호와 혼인하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앞장선다. 1940년 임시정부 내 통합당인 ‘한국독립당’이 출범하면서 남편과 같이 제1구 위원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 요원들을 위해 식사 등 살림을 도맡아 한다.

한국독립당은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정당이다. 충북 여성인물사 자료에 의하면, 한국독립당 중앙당 조직부는 제1구부터 4구까지로 소속이 나뉘어 있다. 제1구 소속에는 김구, 이시영, 엄항섭 등 18명이었고 신명호란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2구 소속은 이광, 김수현, 오건해, 이국영 등 21명이다. 제3구 당원은 이청천, 박영준 등 24명이고, 제4구에는 조소앙, 오영선 등 24명이 당원으로 등재돼 있다. 이들의 활동은 ‘통고’라는 한국독립당 기관지를 통해 각 구별 소속 당원과 집회 일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같이 활동했던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로는 연미당, 사촌인 신순호와 그 어머니 오건해, 김수현과 이국영 모녀가 있다. 국란의 역사적 현장에서 당당히 구국의 중추적 역할을 한 이들을 보면 강한 한국의 어머니 상을 보는 듯하여 미덥고 가슴이 훈훈하다.

남편 민필호는 휘문의숙 재학 시 경술국치를 당하자 중국으로 건너가 신규식 선생이 창설한 박달학원에서 수학한다. 1918년 동제사 이사장인 신규식이 본국의 동지들에게 밀서를 보낼 때 연락 업무를 담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임시정부의 외교 업무를 보좌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신규식 일가와 연을 맺게 된다. 그의 주요 활동을 살펴보면 김구 주석의 판공실장, 임시정부 외무부차장, 의정원 의원을 겸임하면서 경제, 외교 등 다방면으로 중책을 맡아 임시정부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실을 직면할 수가 있다.

신창희와 민필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민영수, 민영주, 민영애 등 가족 모두 독립운동 참여한다. 특히 민영주는 광복군에 입대하여 심리작전 요원으로 맹활약한 여성독립운동가로 꼽힌다. 그녀는 이범석 장군의 비서 겸 재무 담당을 하면서 1945년 이범석 장군의 부관인 김준엽과 혼인을 한다. 김준엽은 일본군에 징집된 뒤 최초로 탈출한 독립운동가로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렇듯 신창희 선생은 본가는 물론 시댁, 일가친척, 사돈까지 독립운동가로 연결된 명문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여성이다. 올곧은 혈통은 그의 자녀들에게로 고스란히 대물림되어 역사에 선 굵은 획을 긋고 있다.

명문가, 좋은 혈통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훌륭하여 이름난 집안을 흔히 명문가라 한다. 하지만 진정한 명문가란 나라의 명운을 짊어지고 고난을 함께하며 이 나라를, 이 사회를 반듯하게 세워가는 이들이 아닌가 싶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온 재산을 나라에 바치며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뛰어든 가문이야말로 진정한 명문가요. 그들의 몸속에 흐르는 올곧은 DNA가 곧 좋은 혈통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나라에서는 신창희 여사에게 2018년 건국포장을, 민필호에게는 1963년 독립장을 수여하며 그 공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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