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ㆍ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얼마 전 갑자기 눈이 펑펑 내렸다. 도심에서 하얀 눈이 쌓인 풍경을 보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오랜만에 맘껏 눈을 즐길 작정으로 소복하게 쌓여있는 덕수궁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사회 초년생 시절 명동에 있는 직장에 근무할 때 머리가 복잡하고 심란하면 가끔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생각을 가다듬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이 쌓인 돌담길 주변의 모습이 낭만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눈발을 피하고 차가운 몸을 녹이려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모습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진다. 붉은색 건물 외벽과 하얀 눈이 조화를 이루면서 잘 어울린다. 초록의 소나무 위에 소복소복 쌓여있는 눈꽃이 아름답고 편안하다.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고 눈밭에 피어있는 한 송이 겨울국화를 바라보며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먼저 피어난 꽃이 실컷 자기를 뽐내다가 조용해지면 또 다른 봉오리가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죽음과 부활이 공존하는 모습에서 신비롭고 예술적인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다. 이렇듯 자기를 빛내다가 지쳐 스러지면 새로운 것들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올라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한창 꽃으로 아름다움을 발산하다가 소진되어버린 안의 약해진 부분을 밀알삼아 떨어뜨려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을 태동한다. 지금은 비록 가냘프게 숨어있지만 머지않아 새로운 열정과 기쁨으로 찾아올 것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물결이 새롭게 성장시키고 고유성은 물론 다양성에도 마음을 열게 한다.

인문지리학의 대가인 중국계 미국인 이 푸 투안은 저서 ‘공간과 장소’에서 사람과 장소의 정서적 유대감을 뜻하는 장소애(場所愛)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공간은 움직임(movement)이 일어나는 곳으로 자유와 모험을, 장소는 정지(pause)가 일어나는 곳으로 안전과 안식처를 상징한다. 공간은 추상적이고 미완성이지만, 장소는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애정과 애착의 대상이 되는 가치의 중심지이다. 공간에 경험과 삶의 애착이 녹아들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때 그 자리는 장소가 된다. 일상적이고 미묘한 삶의 경험들이 인간과 장소 간 따뜻하고 특별한 유대감이 생겨난다.

퀘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안식처를 뜻하며,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말한다. IMF 외환위기 시절 밤낮이 없을 정도로 일에 파묻혀서 과로에 따른 체력이 고갈되어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살다가는 남은 삶을 제대로 살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일 자정 무렵 양재천으로 나가서 한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통해 땀을 흘리면서 체중이 줄어들고 건강이 한층 나아졌다. 아울러 생활 습관이 바뀌게 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요즘에도 가끔 양재천에 나가 산책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바로 양재천 뚝방길 그 자리가 진정한 안식처가 아닐까 싶다.

작년 이맘때쯤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는 성경책 읽기를 좋아하셨다. 어머니를 찾아뵙거나 전화로 안부를 여쭐 때는 미리 성경 구절을 준비하여 말씀드리곤 하였다.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효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말씀이 있다. 스스로 높이지 말라는 뜻으로 겸손을 강조한다. 괜히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더 높은 사람이 와서 밀려나면 망신을 당할 수 있기에 먼저 낮은 곳으로 가서 앉는 것이 좋다. 차라리 끝자리에 앉으면 나중에 초대한 주인이 높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할 때 함께 앉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인다.

정치권이나 정부기관과 각종 단체에서 행사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자리배치라고 한다.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자리나 권력에 대한 욕구는 표현 방식의 차이일 뿐 모든 사람들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많은 출마자들이나 정치 지망생들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월등하게 높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배우기보다는 가르치려고 하고, 듣기보다는 말하려고 하고, 섬기기보다는 다스리려고 하는 자세로는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인정하는 편이 훨씬 낫다.

한때 겨울나무는 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푸르른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나면 잎사귀 하나조차 남지 않는 헐벗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겨울이 지나고 곧 봄이 찾아오면 다시 푸른 옷으로 치장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내고 쓸쓸히 서 있는 나무가 진정 외면하고픈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쓸쓸함이 영원할 것만 같아 일부러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느 순간 겨울나무가 눈에 자세히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비워지고 스스로 겸손해지는 기분이 느껴졌다. 겸손이란 자신을 억지로 낮추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자신에 대해 덜 생각하는 것이고, 자신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로울 뿐이다.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겨울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자를 통해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절망하며 아쉬워했던 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겨울나무와 비슷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떠나버린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붉은 노을과 하얀 눈과 날아오는 새들까지 품어주는 넉넉함이 정말 아름답다. 모든 것들을 품는 겨울나무의 넉넉함과 의연함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사에 지치고 힘들었을 때 양재천 뚝방길에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 다시 새롭게 시작했던 감사의 순간이 떠오른다. 겨울나무가 서 있는 그곳 그 자리에서 헛된 욕망을 내려놓고 진정 겸손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겨울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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