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베르디의 오페라로 대중에게 친숙한 ‘리골레토Rigoletto’는 원래 ‘파리의 노트르담’, ‘레미제라블’ 등을 남긴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희곡 ‘왕은 즐긴다Le roi s’amuse’(1932)를 각색한 작품이다. 위고는 1802년 프랑스 브장송에서 나폴레옹 휘하 장군인 아버지 레오폴 위고와 왕당파 집안 어머니 소피 트레뷔셰 사이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 시대의 혼란 속에서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다녔던 위고는 1912년 파리로 돌아온 후 어릴 때부터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하였으며 1816년 일기에 “샤토브리앙이 못 된다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라고 쓰며 문학에 대한 결의를 다지기도 한다.

위고는 1817년과 1819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콩쿠르와 툴루즈 콩쿠르에서 각각 입상했으며, 형과 함께 잡지 ‘문학 수호’를 창간하기도 하고 낭만주의 작가와 예술가들과 소모임 세나클을 결성한다. 그는 첫 시집 ‘오드’의 성공 후 고전주의 연극의 시간, 자소, 행위의 삼일치 규칙을 깨는 희곡 ‘크롬웰’을 발표하여 논란을 일으키며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인정받는다. 1830년 그가 발표한 희곡 ‘에르나니’를 둘러싼 고전파와 낭만파 사이의 문학적 논쟁에서 위고가 지지하는 낭만파가 승리를 거둔다. 1831년에는 역사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발표하며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다양한 장르에서 창작력을 발휘한다. 그는 문학 창작뿐만 아니라 정치가이자 정치적 저술가로도 활동하였다.

위고는 과거나 외국의 역사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통해 역사적 사실 자체보다 당시 시대 상황과 민중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위고는 고전주의 연극의 엄격한 규칙과 비극과 희극의 구분에 반대하고, 작품 안에 아름답고 추한 것, 비극적인 것과 우스꽝스러운 것, 기품 있는 것과 기괴한 것의 상반된 요소들을 혼합하여 연극의 근대적 혁신을 가져온다.

1832년 발표한 ‘왕은 즐긴다’에서 위고는 실존인물인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루이 12세부터 프랑수아 1세 시대 왕의 어릿광대였던 본명 니콜라스 페라이얼인 트리불레를 등장인물로 삼았다. 이 희곡에서 위고는 프랑수아 1세의 방탕한 여성 편력과 귀족들의 타락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왕의 광대 꼽추 트리불레가 자신의 외동딸 블랑쉐를 왕이 겁탈한 것을 알고 청부살인업자를 매수하여 왕을 암살하고자 시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왕은 즐긴다’는 제목과 달리 실제 작품의 주인공이자 왕보다 더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인물은 바로 트리불레이다. 트리불레는 작품 속 등장횟수나 독백의 분량 차원에서 다른 인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극 초반부에는 왕조차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과 위세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약자로서 조롱과 천대를 받는 존재다.

위고는 이 작품에서 우스꽝스럽고 천박한 트리불레의 신분과 외모와 대조되는 딸의 죽음 앞에 비탄에 잠기는 그의 부성을 통해 희극과 비극의 요소를 하나로 뒤섞는다. 또한 위고는 작품에서 역사에 실존한 왕의 타락과 방탕, 주변 귀족들의 위선을 트리불레의 사회적 위치, 그의 내적 갈등 및 그가 처한 상황에 대비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을 천대하고 이용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한다. 이 작품은 1832년 11월 22일 프랑스에서 초연되었지만, 어릿광대가 왕의 암살을 계획했다는 전복적인 설정이 지극히 혁명적이라는 이유로 바로 다음날 공연이 금지된 후 50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연극무대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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