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예술, 연구, 교육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한 성과물이 창의적 가치를 가지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고, 이를 사용한 작품을 제출하지 못하도록 규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규제한다고 해서 인공지능의 활용이 줄어들 것 같지 않으며, 오히려 음성적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지금부터 130여 년 전에 태어난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생각을 불러오고 싶다.

그가 활동한 20세기 초에는 카메라의 복제기술이 발전하였다. 따라서 제작 비용이 많이 드는 초상화 대신, 집에 사진을 걸어두는 집이 많아졌다. 더구나 카메라는 생생한 재현 능력 때문에 큰 인기를 끌면서 사진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라는 논쟁이 등장했다. 그 당시에는 작가가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인 카메라의 버튼을 눌러 만든 작품은 복제도 가능하므로 예술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 당시 예술이란 사진처럼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 이면에 있는 작가의 메시지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발터 벤야민은 이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그는 논쟁의 방향을 바꾸어, 사진과 같은 복제기술의 산물이 예술인가에 대해 논쟁할 것이 아니라, 복제기술의 등장으로 예술의 정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유사한 논쟁은 반복되는데, 2000년대 초에 등장한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작품은 필름으로 찍고 현상, 인화의 과정이 없으므로 사진이 아니라고 주장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곧 사라졌다. 즉,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사진이라는 개념은 확장되었으며, 예술의 범주는 고정되지 않고 새로운 기술 매체의 등장으로 지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 연구, 교육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만든 성과물을 규제하려는 시각을 버리고, 기술의 발달에 따라 작품의 창의성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복제기술의 시대에는 원본보다 더 생생한 해상도로 선명한 색감과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복제품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원본만이 가지는 아우라는 붕괴하였고, 우리는 컴퓨터 화면에서도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는 예술의 대중화 시대를 누리게 되었다. 그 후, ‘공장’이라는 작업실에서 사람들을 고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유명해진 앤디 워홀의 예술품들이 탄생하였다. 복제기술은 예술작품을 편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작을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즐기는 예술 행위도 가능해졌다. 과거에 예술작품은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하며, 한번 제작하면 평생 그 모습을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작품의 요소를 변형하고 새로운 성격을 부여하면서 예술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2010년 프랑스 파리의 시립미술관에는 디지털 장비로 명화들을 복제하고 움직이는 전시 효과까지 시도한 ‘Revelations’라는 작품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열렸다. 원본이 없는 복제 이미지를 보러 사람들이 몰렸고, 이제는 예술작품의 원본이 복제본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복제품의 가치는 수정 능력에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예술작품은 한번 완성되면 끝이지만, 복제품은 끝없는 편집이 가능하다. 원본은 유일한 존재로서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만, 복제품은 원본의 아우라 대신 새로운 예술품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의문이 드는 것은, 복제품으로 인해 원본의 아우라도 붕괴되는 시대에 원작의 가격은 여전히 왜 이렇게 엄청나게 높은가? 하는 것이다. 2015년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라는 작품은 미술품 거래 사상 최고가인 약 3272억원에 팔렸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복제품을 통한 새로운 예술적 창조를 통해 원작에 대한 아우라가 붕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작품 활동에 대해 너무 규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규제보다는, 자유로운 허용을 통해 더욱 원작의 가치를 널리 퍼트릴 수 있는 다양한 창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지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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