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읍내 단골 미장원 앞에 엄마를 내려주고 오면서 문득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설 명절이 다가오면 연례행사처럼 시골 마을 어머니들은 단체로 파마를 하는 날이 있었다. 읍내 미용실에 미용사가 가방을 들고 마을로 출장을 오는 날이었다. 이장 집 안방에 모여 앉아서 차례로 머리를 지지는 날이었다. 그 당시 파마를 어른들은 머리를 지진다고 하셨다. 화롯가에 둘러앉아서 찐 고구마와 동치미를 드시면서 동네방네 온갖 소식들이 소문과 풍문이 되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어머니들은 미용사에게 한결같이 강하고 쎄게 파마를 해달라고 주문을 한다. 그래야 빨리 풀어지지 않고 다음 명절 때까지 버틸수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 약하게 말아서 머리가 금방 풀어졌다는 불만을 일년내내 하기도 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도 해가 어둑해져야 끝이 났다.

뽀끌뽀글 라면 같은 머리를 하시고는 종종걸음으로 돌아오시던 엄마에게 배어있던 중화제 약 냄새가 오랫동안 방안에 머물러 있었다. 더부럭한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오신 날 엄마의 모습은 신여성 같이 보이도 하였다. 당신의 머리 파마를 하시면 엄마의 명절 맞이 준비는 다 끝나는 셈이었다. 그 시절 엄마와 마을 어머니들의 머리를 담당해주던 읍내 삼거리 미장원 원장님은 어디에서 잘 늙어가고 계실까! 아니면 생을 달리하셨을지, 주인이 바뀐 그 미장원 자리에는 헤어샵 이라는 신식 네온 간판이 돌아가고 있었다 출장을 다니시던 미장원 멋쟁이 원장님은 기억 저편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엄마가 파마를 하는 두시간여를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시간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분명 명절 대목이어서 미장원도 바쁠거라는 짐작으로 차를 몰고 읍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읍내 구석구석들이 나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내 삶의 지지대가 되어주었던 시공간 들이었다. 하교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읍내 터미널 대합실의 그 낡은 나무 의자들도 여전할까! 낡은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서 사람들 구경을 하는 것을 나는 즐겼었다. 터미널 대합실에서 날마다 마주치던 교복의 청춘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며 늙어가고 있을까!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은밀하게 자주 가던 터미널 뒷골목에 빵집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버스를 놓치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 빵집은 좋은 사교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빵집에서 자주 마주치던 뿔테안경의 그 남학생은 지금도 멋있을까! 그 빵집의 흔적은 간데없고 바로 옆에 베이커리 카페의 아메리카노 커피향기만 골목 안에 가득했다. 교복을 맞춰 입던 양장점 간판도 사라지고 정장을 즐겨 입으시던 아버지의 양복을 지어주던 ‘런던라사’라는 양복점의 간판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피자집이 생겼다.

지금은 행정복지센터라고 바뀐 읍사무소 골목을 지나서 나의 국민학교로 향했다. 옛날엔 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던 거리가 아주 짧게 느껴졌다. 학교 앞 문방구에 주렁주렁 매달렸던 장난감들과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듯했다. 교정에 이순신 동상은 여전히 우뚝 서서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만국기가 펄럭이던 운동회날은 온 동네 사람들의 마을 잔치이며 축제 마당이었다. 그때 그 아이들은 교정에 아름드리나무처럼 거목들이 되어 세상의 중심에 서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득한 추억과 기억들이 사라져서 소멸되고 또다시 생성되는 그 어떤 것들이 많음은 삶의 이치인 것 같다. 문득 떠나본 잠깐의 시간여행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은 모두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꽃이 지지 않고 영원하면 그 꽃을 눈과 마음에 담으려고 어느 순간 안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도 사람도 시간도 결국은 다 사라지고 만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이미 사라지고 또 사라져가고 있는 많은 기억들이 오늘은 나를 토닥여주는 위안과 격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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