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이희영 배재대학교 기초교육부 교수

수업시간에 토론이나 토의를 해야 할 상황이 있을 때마다 늘 강조하는 것들이 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할 것, 쟁점을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할 것, 공동체를 위해 더 나은 대안을 찾을 것. 이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할 만큼 너무나도 기본적인 품위이지만, 우리는 말하기 상황에서 때때로 이런 것들을 잊는다. 이것은 곧 다툼이 되기 십상이다.

어느 때라고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겠냐만 최근의 뉴스는 온통 다툼이다. 뉴스페이지는 상대에 대한 공격과 비난, 타협 없는 힘 대결, 그리고 냉소와 조롱으로 가득 차있다. 상대 진영의 말 한마디, 사진 한 장으로 온갖 꼬투리를 잡으며 상대를 멸시하고 비아냥거린다. 학교 교육에서 협력적 소통역량이 강조되며, 토론과 토의 교육, 문제해결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데, 사실 현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꼴이다.

현장의 메시지는 이렇다. 논리가 부족할 때는 힘으로 찍어 눌러라. 반박할 여지가 없을 땐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물고 늘어지며 본질을 흐리게 만들어라. 사실이 아닌 것도 일단은 사실이라고 우겨라. 듣기 싫은 말이 있으면 상대의 입을 틀어막아라. 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으면 파업해라.

실제로 우리 사회는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치열한 논쟁은 사라졌다. 끝까지 상대를 설득하고, 더 나은 대안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각종 보도들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를 위한 타협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몇 가지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최근 대통령은 민생토론회를 열며 국민과 가까이하는 소통을 내세우고 있다. 국민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정책담당자들에게 호통치며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 목소리를 드높이는 영상이 마치 정책 홍보인 양 게시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토론회는 각본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마도 그 이유는 본인이 생각하는 바와 다른 목소리에 가혹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실은 처음에는 새만금 예산을 복원하라는 전북지역 국회의원의 입을 막았고, R&D 예산의 회복을 호소하는 카이스트 졸업생의 입을 막았으며, 의료개혁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입장을 요구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계획되지 않은 상황, 준비되지 않은 발언에 대응하는 대통령실의 태도가 상대의 입막음인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매우 유감이다. 돌발 상황일지언정 국민의 말을 경청하고 정부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품위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귀를 막은 채 각자의 입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 속에 우리나라 의료 정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숙고와 더 나은 대안 마련을 위한 대의적인 타협을 위한 노력 역시 없어 보인다.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태도 역시 찾을 수 없다. 그저 면허를 박탈하겠다.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나겠다는 협박만 난무하다. 이 사이 피해자는 국민이다.

토론이란 본디 나와 다른 생각을 마주하는 아주 불편한 일이다. 이 불편한 상황을 성숙하게 이겨내는 힘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다. 이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대학생도 노력하는 지점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인이, 의사들이 모를리 없다. 우리 정치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품위를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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