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이달 초 의사였던 윤 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순직 5주년 추도식이 전남대 화순캠퍼스 의학 도서관에서 열렸다. '의사 윤 한덕'의 정신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기도 하고, 그의 고귀한 정신과 숭고한 희생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를 위해 밤을 새우며 고민하다 홀로 순직한 윤 한덕 중앙 응급의료 센터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겁다. 2019년 2월 4일, 설 전날,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윤 한덕 센터장의 책상 위에는 재난 대비, 외상 센터 개선 방안, 중앙응급의료센터 발전 방향에 관한 서류 등이 놓여 있어 죽음 직전까지 희생한 흔적이 보였다.

정부도 고인의 순직을 인정하고 국가유공자로 지정,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의료인의 희생정신과는 멀어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윤 센터장의 의료인 정신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정부가 부족한 의사를 늘리기 위한 ‘의대생 증원’이란 이슈를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 단체 간의 갈등이 ‘의료 대란’으로 연결되고 있다. 의료 대란의 본질은 이러하다. 우리가 꼬박꼬박 내는 의료보험의 80%가 의료인들에게로 가고, 만약 의사의 수가 더 늘어난다면 그들의 수입은 증원되는 의사 인구에 비례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명분도 없다. 아픈 환자를 볼모로 잡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더는 용납돼선 안 된다. 의사들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사회적 비난과 고립만 자초할 뿐이다. 주요 병원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각각 사직 및 휴학 투쟁에 들어가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의료 대란’이 현실화될 것이 뻔하다.

총파업 결의만 없었을 뿐 젊은 의사와 학생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정면으로 맞선 셈이다. 이런 상황에 오기까지 설득이 부족했던 정부 책임도 있겠지만, 이유 불문하고 환자를 볼모삼아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의사 단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수요도 늘어 의사 증원은 시대적 흐름이다. 국민은 ‘오픈 런’이나 ‘응급실 뺑뺑이’ 그리고 ‘수도권 원정 진료’ 같은 일을 더는 감내할 여력이 없다. 게다가 국민 90% 가까이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보건의료노조 여론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사 단체도 인정해야 한다.

의사 단체가 집단행동 카드까지 꺼낸 것은 지난 2020년 집단 휴진 당시 ‘절반의 승리’를 거뒀던 학습 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는 업무 개시 명령을 어긴 전공의 등 10명을 고발했다가 취하했다. 의사 단체들은 의사들이 버티면 정부도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이번 정부 정책은 확실히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강행하면 면허 취소까지 고려하겠다며 엄정 대응 방침을 세웠다. 정부는 의료 공백이 생길 경우, 군 병원서 응급 환자를 치료하고, PA(의사 보조) 간호사까지 활용하겠다고 했다.

결국 의·정 갈등이 폭발 직전에 놓인 것이다. 굳이 희생·봉사·장인정신이 담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의사의 본분은 의료 현장을 지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의료 현장을 떠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의사는 의사가 아니다.

정부가 28차례나 의사 단체와 대화했고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내놓은 점엔 눈을 감는다. 정부가 원칙을 지켜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정부는 19년째 공급을 통제해 이익을 극대화해준 직종이 의사 말고 어디 있나? 최근엔 건강 보험수가 인상 등 필수의료 지원에 1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의료 사고의 법적 책임을 덜어주는 특례법의 제정도 약속했다. 그런 만큼 이번엔 의사들도 대승적으로 의대 증원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최근 한국 갤럽 조사에서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계획에 응답자의 76%가 찬성했기에 무모한 집단행동 시도는 접어야 한다. 그런데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 할 의사가 오히려 그들을 인질로 삼아 의견을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용납하기 어렵다.

먼저, 의사들은 앞으로도 계속 밥그릇을 독과점 하겠다는 선민의식은 물론 반 헌법적 집단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무늬만 히포크라테스인 채로, 생명에의 외경이나 일말의 휴머니즘도 없이, ‘의사직’을 수행하는 사람은 의료기술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의사는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히포크라테스의 겉모습만 흉내 낼 뿐,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잇는 의학도들은 찾기 힘들다. ‘특정 집단’의 지위와 부(富)를 지켜주기 위해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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