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의 톺아보기] 김명기 충청일보 편집인·논설위원

 

 '지는 게 어렵다'며 세계 바둑계를 주름잡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세돌의 가장 극적인 서사는 AI(인공지능)와의 대결이었다.
 2016년 3월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이세돌은 완패했다. 
 바둑계의 예측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그만큼 AI는 완벽에 가까웠다. 오히려 네 번째 대국에서 거둔 이세돌의 승리가 길이 남을 역사로 기록됐다. 바둑 관계자들은 현재 AI에 대적할 만한 프로기사들의 치수는 두 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과학사(史) 속 천재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논픽션 소설을 쓰는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가 내놓은 신작 '매니악(MANIAC)'에 이세돌 이야기가 나온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상대로 기적의 승리를 일궈낸 네 번째 대국을 그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실로 신들린 움직임, 신의 손길이 닿은 한 수였다. 인간은 만 명 중에 단 한 명만이 떠올릴 수 있었던 수. 이세돌의 끼움 수에 알파고가 허둥댄 것은 그래서였다. 인간의 경험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은 물론, 알파고의 무한해 보이는 능력조차 초월한 수였으므로."


 세련된 옷차림의 여성이 도심 속을 걷고 있다. 하얀 사막 위 우주선이 보이고, 우주복을 입은 남성이 성큼성큼 걸어간다. 뉴욕 맨해튼 거리가 바닷물로 채워져 있고, 각종 물고기들이 유영을 하고 있다. 모두 AI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의 영상이다.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지난 15일 텍스트를 동영상으로 만들어주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공개했다. 이 AI 시스템의 이름이 '소라(Sora)'다. 여러 캐릭터와 특정 유형의 동작, 복잡한 장면 등 최대 1분 길이의 동영상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소라라는 이 녀석은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어 프롬프트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생생한 감정을 표현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세상이다. 명령어를 입력하면 현실과 다름없는 영상을 뚝딱 만들어 내니 말이다. AI와 결합한 통신,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의 화두도 AI라고 한다.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오는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데, 이번 행사의 최대 화두는 인공지능(AI)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특히 국내 통신사들은 '통신 특화 AI'로 다른 업체들과 차별점을 만들 계획이라고. AI노트북으로 작문·영상 생성에 작곡까지 하는 세상이다. 인텔이 AI칩을 탑재한 AI노트북 12종을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PC 플랫폼으로 크리에이티브 작업과 스트리밍, 게임 등 업무나 일상에서 AI 기능을 최대로 활용하도록 한다고.

 
 점점 더 진화하는 AI 세상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것들의 놀라운 진화 속도에 현기증이 난다.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효율성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호재이지만, 그것들이 또 어디까지 갈 것인지에 대해선 일말의 두려움마저 든다.

 인간의 자리 또한 인공지능이 점점 더 차지하고 있다. 우리 생활을 잠식하고 있다. 분명 그것들의 한계도 있을 터. 오픈AI에 따르면 '소라'는 물리적 인과관계나 공간 정보를 혼동하기도 한다고. 그래서 전문가 검증을 거치고 있고, 제한된 창작자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생성형 AI가 딥페이크 영상처럼 유해 영상을 무한히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인간의 명령어를 거부한다면, 그것들의 '자율성'이 인간에게 대항한다면 어떤 국면이 전개될 것인가.

 터미네이터가 떠오른다. 세상의 지배하는 게 인간이 아닌 AI로봇이라는 설정은, 이제 다시금 생각해보니 공상과학에 머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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