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눈] 노기섭 청주대학교 인공지능소프트웨어학과 교수

‘공리(公理)’라는 것은 이론 체계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근거가 되는 명제를 말한다. 너무나 자명한 진리이므로 증명할 필요가 없으며, 다른 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증명하는 데 사용되는 원리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으로 불리며 영어로는 ‘엑시옴(axiom)’이라 부른다. 명제라는 것은 참과 거짓을 어떤 논리적 판단 내용을 언어나 기호 등으로 표현한 것이다. 명제는 주로 ‘A는 B이다’라는 형태를 취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수많은 공리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나 사회의 발전이라는 개념도 다양한 공리로 구성하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발전한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명제의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위해 다양한 명제가 필요하다. ‘발전’에 대한 엄밀한 학문적 정의는 뒤로하더라도 무엇인가 참된 것으로 받아들일 기본 가정은 필요하다. 즉 공리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 또는 우리 국민이 받아들인 공리는 ‘연구개발 투자는 국가 발전이다’, ‘교육은 국가의 미래이다’라는 것들이다.

우리 국민이 받아들이는 공리 시스템은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가 작은 환경적 특성 때문에 교육, 연구개발 등과 같은 소프트 파워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연구개발이 국가 발전의 핵심이라는 가정에 증명이 필요 없는 명제로 받아들였다. 모든 사람은 발전의 핵심 중 하나로 연구개발을 자명한 명제로 인정한 것이다. 즉, 공리로 성립되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수많은 분야의 명제를 수립하였고, 그 안에서 대한민국이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리 자체가 붕괴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온 국민의 자명한 생각 체계를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당황스럽기도 하다. 정부 통계상으로 연구개발 예산은 1992년 이후 33년 만에 삭감되었다. 우리는 ‘국가 부도’ 상태였던 IMF 시절에도 다른 모든 예산을 줄여도 연구개발 예산만은 줄이지 않았다. 그만큼 미래를 위해서는 연구개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든 국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부 예산은 국가 운영 및 미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공리로 인정받은 ‘연구개발 투자는 국가 발전이다’라는 것을 부정한 것이다. 연구개발 예산의 부정 사용은 시정하거나 경중에 따라 처벌하면 될 일이다. 운영상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연구개발 예산을 14% 이상 삭감한 것은 우리 미래와 발전에 대한 공리였던 ‘발전’을 붕괴시킨 것으로 매우 심각하다.

연구개발은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고, 오랜 기간 티가 안 나고, 반대 세력이 매우 약하다는 특징이 있어 삭감의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구개발과 미래를 우리의 공리로 받아들였기에 지켜낼 수 있었다. 발전의 공리를 부정하였으므로, 지금까지 운영되던 다양한 분야의 근간이 흔들릴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연구자들은 떠나고, 중장기 연구는 중단되고, 단기 성과에만 관심을 둘 것이다. 약해진 기초 체력은 산업계로 전가되어 국가 성장력을 잠식할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정부는 공리 체계를 흔들었다면 대체 가능한 공리를 제시하든지, 아니면 기존 공리를 통해 ‘국가 발전’이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미래 한국의 발전을 위해 답답한 현 상황이 조만간에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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