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남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장터 일원에서 ‘3.1운동 제105주년 기념 2024 아우내 봉화제’가 성대히 열렸다. 아우내 봉화제는 3.1운동 당시 호서지방 최대 규모였던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고 유관순 열사와 순국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해마다 3.1절 전날 밤에 열린다.

올해 아우내 봉화제에도 약 3000여 명의 유족, 시민 등이 참석해 오후 5~8시까지 유관순 열사 추모각을 향해 횃불 행진을 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참가자 전원이 대형 태극기를 앞세워 손에 횃불을 들고 3.1 당시인 1919년 아우내 장터를 재현한 것이었다. 김구응과 유관순 열사의 주도로 일어났던 독립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참가자 전원은 '만세'를 소리 높이 외쳤다.

이들은 아우내 장터에서 아우내 독립 만세운동 기념공원까지 총 1.4km를 행진했다. 아우내 장터 독립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1일 아우내와 가까운 매봉산과 인근 24개소에서 봉화를 올려 다음날 예정된 거사를 알렸다. 이곳은 다음날 수천 명이 아우내 장터에 모여 독립 만세운동을 부르다가 그 자리에서 18명이 순국한 대표적 항일 의거 장소로 알려졌다. 104년 전 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며 횃불을 손에 들고 아우내 장터를 행진하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러 당시 선열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아우내 장터를 가득 채운 유족, 시민들은 만세를 힘차게 외쳤고, 횃불로 아우내 장터를 환하게 밝혔다. 이 행사를 거국적으로 하는 이유는 3·1운동이 민족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며, 아우내 장터가 바로 만세운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운동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한국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으며, 일제의 무단통치 방법을 문화통치로 바꾸게 한 운동으로 평가하고 있기도 했다.

특히 3·1 만세운동의 상징처럼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는 충남 천안 병천 출생으로 유종권씨의 5남매 중 둘째 딸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 16세의 소녀였다. 학교장의 강한 만류에도 유 열사는 학교 담을 뛰어넘어 파고다 공원, 서울역의 만세운동 대열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 열사는 3월 10일 휴교령이 떨어지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와 학교와 교회를 찾아다니며 4월 1일에 만세 운동 참여를 권유했다. 아우내(병천) 장날 장터에는 3천 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열사는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헌병의 총검에 부모가 모두 즉사하고 유관순 열사도 주동자로 체포되어 공주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었다.

수감 중인 동지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열사는 지하 감방에 감금되어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을 당했다. 혹독한 고문으로 방광이 터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고문의 후유증과 굶주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경 서대문 감옥에서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했다.

유관순 열사는 초지일관 독립 만세 의지를 굽히지 않은 한국의 ‘잔 다르크’로 불렀다.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에 국가보훈처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기도 했다. 3·1운동을 맞아 아우내 장터에서 거행된 횃불 행진은 우리 국민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무엇보다 부국강병이다. 동북아 4대 강국의 패권 경쟁 속에 한반도의 남북 분단국인 한국의 위기는 항상 존재한다. 미·중 갈등과 북핵 도발 위기를 벗어나려면 나라 지키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통합·정의·비폭력의 3·1정신은 과거 100년 우리 민족을 살아 있게 한 생명이요, 향후 100년의 미래를 밝혀 줄 등불이기도 하다.

과거 뼈저린 3·1운동의 상처를 거울삼아 민주와 시장경제의 기치를 높이 들고 온 국민은 뭉쳐야 한다. 그러려면 온 나라가 코로나 19에 맞섰던 것처럼 우리는 3·1정신을 거울삼아 분열과 갈등을 넘어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독립 운동가들은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임시헌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한다, 하여 한 민족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세계만방에 선언했다.

3‧1 만세운동은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 운동가들의 애국정신이 재조명하게 하고 있어 의미가 크다. 정부는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 열사의 3․1 만세운동은 지금, 우리는 그 역사적 거사를 통해 찬란한 시민주권의 힘을 깨닫게 했다.

3․1 만세운동은 평범한 민중들의 항거였다.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로 인해 국권 침탈에 대한 민중들의 의식이 크게 변화한 결과다. 일제 무단 통치에 맞선 민중혁명은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이는 광복 이후에도 국가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근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은 사실로 혹 역사를 왜곡하지는 않았는지,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의 혁혁한 공은 ‘어느 서숙에서 세웠는지’, 만주 벌판에서 순국하고도 그 죽음을 인정받지 못한 억울한 유공자는 없는지, 국가는 역사를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국민에게 이해시켜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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