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양승복 수필가

파릇한 새싹들이 꿈꾸는 계절이다. 어린아이들도 재잘거리며 새 학년이 되어 학교에 꿈을 먹으러 간다. 생각만으로도 버들가지에 물오르는 듯 생기가 도는 봄이다. 초등학교 입학은 코 닦는 흰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입학했던 옛날이나, 생각들이 자유로워진 지금이나 가슴이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사회로 나가는 첫발이니 두려움과 기쁨이 공존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올해 손녀가 입학을 한다. 그날그날 날씨를 핸드폰으로 찍어서 “비가와요, 눈이 와요” 하고 알려주는 기특한 아이다. ‘뭐 하세요, 어디 있어요?’ 하며 문자로 안부를 묻거나 전화를 해대는 바지런한 아이다. 까르르 까르르 웃는 소리가 옥구슬 굴러가는 듯이 맑아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사랑스런 아이다.

그런 손녀가 민트색으로 된 책상을 사달라 한다. 함께 가기를 원하여 차를 타고 나들이 삼아 갔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얼굴을 살피더니 “할머니는 언제부터 늙었어?” 한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여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내 머릿속은 곤궁함 속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느라 분주했다. “지효 만나려고 늙었지” 간신히 찾은 대답에 손녀의 입이 배시시 벌어졌다. 두 손을 잡고 가랑이 사이로 넣으며 “응 ~ 그랬구나” 하며 헤 하고 웃는 모습이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내 아들이 초등학교에 갈 때는 형편이 어려워 책상을 사주지 못했다. 큰 엄마가 사주신 책가방 선물에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풍족한 시절이 아니었음에도 그 당시 유행하던 양복을 아들에게 사 입히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가슴 설레었었다. 입학식 날, 아들도 들떠 있는 모습이었지만 애써 침착하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머리는 움직이지 않고 눈만 굴리며 옆을 살피는 모습이 그랬다. 앞으로 나란히 할 때도 두 손을 반짝 올리며 경직된 추임새가 그랬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손녀를 보며 어른이 되어 있는 어릴 적 자식의 모습과 조우했다. 멀리 가버린 낡고 그리운 기억이 소중하게 살아났다.

책상은 내가 생각하던 어린이 책상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입이 벌어졌으나 손녀가 그 책상을 이미 찜해 놓았다고 한다. 며느리는 “지금 사면 중학교까지 사용할 거예요”라고 한다. 시어미의 마음을 읽은 눈치다.

손자 손녀를 보기 위해 세월을 밟고 왔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느리게 가고 있다. 어느새 그렇게 이어져 세상은 저만치 가고 있는데, 나는 5000원 주고 가방을 사주던 시절에서 멀어지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저렴한 책상도 많을 테지만 내 며느리도 학부모가 되는 첫 마음이니 달떠있으리라 생각한다.

입학식 날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아들은 바르게 자라 딸이 없는 나에게 귀한 손녀를 안겨주고, 그 손녀가 자라 학교에 입학을 한다고 하니 고마운 흐름이다.

손녀가 커 가는 세상은 우리가 산 시대보다 많이 복잡할 거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정보는 한 낮의 따가운 햇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손녀는 태권도에 관심을 갖고 국가 대표가 되고 싶다고 한다. 헛된 희망이 아닌 것 같아 식구들이 응원한다.

너무 뜨겁게 살아가려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보다 빠르게 뛰어가려다 넘어지지 않는 삶을 살길 바란다. 어려운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아이로, 순수함을 간직한 영특한 아이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로 자리길 바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좋아하는 자장면을 먹고 가자는 말에 배시시 웃는 순수한 모습을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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