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3·1운동 기념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지금 한일 양국은 아픈 과거를 딛고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자유·인권·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고 말했다. ·일 과거사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일 양국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역사가 남긴 어려운 과제들을 풀어나간다면 한·일 관계의 더 밝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관계의 현 상황은 어떠한가.

일본의 노골화된 독도영유권 도발에,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과거사에서 비롯된 민감한 갈등 현안이 차고 넘친다.

여기에 통절한 반성이 앞서야 할 일본에겐 향후 한국 국민에게 분노를 일으킬 만한 사안들이 많이 남아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이어진 한일 관계 개선 분위기 속에서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번 달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 검증, 다음 달 외교 청서 발표 등이 예정돼 있는데, 일본은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 등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다음 달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 제사에 일본 각료와 국회의원들의 대거 참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관계 개선 분위기가 충분한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일본의 보다 전향적인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그럼에도 과거사는 덮고 가자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파트너십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한일 양국이 취할 지향점은 서로간의 신뢰 속에 우호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정답지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견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기엔 전제 조건이 있다. 가해자인 일본이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가해 행위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피해자가 가해자의 가해 행위를 용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일본에 대해 동반자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 것이다.

게다가 왜 하필이면 3·1운동 기념식에서 그런 발언이 나와야 하는 것인가.

3·1운동은 1919년 일본의 무단 통치에 대항해 일어난 전 국민의 비폭력적 투쟁이다. 일제는 이를 총과 칼을 앞세워 무력 진압했다. 그 가슴 아픈 역사적인 날에, 그러면서도 민족적 자긍심이 충만한 역사적인 날에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한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3·1운동 정신과 결이 닿아있다 하기 힘들다.

3·1운동은 대한민국 독립의 기초를 마련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며, 전 세계에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제헌 헌법의 전문에도 대한민국은 기미삼일운동으로 건립됐음을 선언했으며, 선언의 정신은 현행 헌법에도 승계되고 있다. 그러므로 3·1운동은 대한민국 건국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일본 정부의 전향적이고 진정성이 담긴 조치들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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