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건 유카리스심리상담센터 대표·작가

우리는 대부분 약속 장소를 가는 대중교통 이용 중에 허락된 잠시나마의 시간 또는 바쁘고 고된 하루 끝에 주어진 휴식 시간의 대부분을 스마트폰 속 메신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하며 보낸다. 분명히 쉬는 시간임에도 눈은 시각적인 정보를 계속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짧은 러닝 타임을 가진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의 릴스를 아무런 생각 없이 넘기며 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우리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주는 것은 어떨까 싶다. 하지만 나조차도 어쩌다 생긴 쉼의 시간에, 특히 아무런 일을 하기 싫을 때는 무작정 유튜브를 꺼내어 놓을 때가 있다. 가령 ‘먹방’이라든가, 운동 영상 등의 짧은 영상만을 올린 쇼츠를 본다. 그런데 그때마다 오히려 더한 피로감을 느낌에도 별 생각 없이 계속 보게 된다. 결국 한가한 틈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자극을 부여하는 것이다.

근력 운동의 경우에도 근육을 찢는 행위를 통해 성장시키는 것인데, 과도한 운동 이후에는 충분한 잠과 휴식을 통해 근육을 회복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휴식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장거리 운전에 엔진이 혹사되고 과열이 되면, 정차하여 엔진의 열을 식혀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우리의 정신에도 예외는 아니다. 하루 중 시각적인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진짜 휴식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우리에게는 잠시 동안의 ‘멍 때리기’가 있어야 한다.

멍을 때리는 동안 뇌는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사람의 뇌는 쉬는 동안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 불리는 부위가 활성화된다. 시사상식사전에서 DMN은 휴지 상태 네트워크라고도 하며, 평소 인지 과제 수행 중에는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뇌의 각 부위를 연결시켜 주어 창의성과 통찰력을 높여 준다고 한다. “멍 때리기를 통해 창의성을 길러라”라는 말이 바로 이 DMN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워싱턴대 의대의 뇌 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교수에 따르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사람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라고 말했다. 특히 스트레스가 증가하거나 따분하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이 가중되거나 졸음이 몰려올 때 작동한다.

이는 컴퓨터의 불필요한 인터넷 캐시 파일을 삭제하듯이 사람의 뇌 또한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고 그동안의 모인 정보와 경험들을 정리하는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불필요한 정보가 제거된 공간에는 필요한 정보들이 쌓이기 시작하며 기억의 형태로 남는다. 불필요한 정보들로만 가득하다 보면 저장 공간이 부족하여 정작 필요한 기억을 저장하기가 어려워진다. 만약 정신이 날 듯 말 듯하다가 끝내 잊는다면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뇌의 휴식과 창의성을 가져다주는 멍 때리기도 과하면 독이 된다. 멍을 자주 때리면 뇌세포의 노화를 빠르게 진행하여 치매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평소에 뇌를 사용하고 멍 때리기를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닌, 평소 두뇌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멍 때리기를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과도한 두뇌의 사용으로 인해 환기가 필요할 때에 매스컴을 통하여, 스페인의 낮잠 문화인 시에스타, 간단한 바깥 산책, 산림욕, 오프라인에서의 사람들과의 유쾌한 만남 등의 휴식 방법들이 소개되었다. 이러한 방법들이 효과적이긴 하나, 바쁜 현대 사회에서 휴식을 위해 컴퓨터 앞에 있다가 근처 산책로로 쉬러 갈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2023년 시드니 대학의 교육심리학 전문가 폴 긴스 교수와 연구원들은 72명의 호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이들의 주의력을 빠르게 고갈시키기 위해 약 20분이라는 시험 조건에서 어려운 고등 수학 20문항을 풀게 하였다. 이후 한 집단은 집중력이 고갈된 채로 두 자리 숫자를 어떻게 곱하는가에 대한 짧은 수업을 계속하여 공부했다. 두 번째 집단은 5분간 타이머를 설정하여 휴식을 취했고, 세 번째 집단은 호주에서 산책하는 1인칭 시점의 비디오를 5분간 시청하였다. 그 결과 두 번째, 세 번째 집단이 무휴식의 첫 번째 집단보다 높은 집중력을 보였다. 폴 긴스 교수는 “집중력을 높여 생산적인 일을 하려면 두뇌에 5분 동안 휴식을 제공하라”고 하였다.

이렇듯 DMN을 활성화하려면 우리의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 때리기가 필요하다. 5분간 타이머를 설정하여 시각적 자극까지도 차단한 상태로 온전한 휴식에 빠져들어 보자. 그렇게 회복된 집중력을 통해 생산적인 일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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