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정신없이 바쁘게 활약하고 있는 사업가나 유명한 사람들이 받고 있는 질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라고 한다.

‘건강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집사람이 짜증을 내지는 않습니까?’, ‘어떻게 즐기는 시간을 갖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은 적당히 레크레이트하고 있으므로 자기가 하는 일에도 정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오직 일밖에 모르고 오직 공부밖에 모른다는 사람들이 있다.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특별한 취미 같은 것은 없고 일하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입은 대성할 수 없다. 오직 일 밖에 오직 공부밖에 모르는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고 성격 또한 옹졸한 인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육체는 일만 계속해 가지고서는 건강상태가 오래 계속될 수가 없다. 적당히 릴랙스(relax)하고 레크레이트(recreate)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즐겁게 노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노는 데는 세 가지의 이득이 있다.

첫째, 인간의 폭이 넓어진다. 일에만 파묻혀 있다가 레크레이션이란 새로운 리듬을 타게 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타인의 성공을 시샘하거나 타인을 파멸 시키고라도 자기 사업만은 성공시키겠다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기분도 알게 된다. 타인의 결점이나 약점을 용서할 수도 있게 된다. 포용력을 가지게 되고 인간에 대한 이해심이 깊어진다.

둘째, 발상(發想)의 방법이 달라지고 범위가 넓어진다.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일단 자기의 일과 떨어져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므로 날마다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일상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기분이 전환된다. 인간 누구나가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있고 컨디션이 나쁠 때도 있다. 일벌레인 사람은 이럴 때 점점 슬럼프의 늪에 더 깊숙이 빠지게 되는 것이지만 놀 줄 아는 인간은 여기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다. 기분의 컨트롤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놀 줄을 아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일하기 싫어하고 직업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할 것인가 술을 마실 것인가. 여자와 노닥거릴 것인가 하는 태도결정을 요구 받게 되면 물론 일을 택하는 사람이다. 사나이 일생을 거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놀 줄도 아는 것이다. 그릇이 큰 사람이란 노는 데도 일하는 데도 철저한 인간이라 해도 좋다. 논다는 것도 결국 스스로를 연마하고 환경 조성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은 조율(調律)이 잘 되어야 한다. 너무 팽팽하게 줄을 당기면 높은 음은 잘 나오지만 줄이 끊어지기 쉽다. 너무 풀어주면 음이 나쁘다. 긴장과 이완 또한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된 생활이 이상적이다. 긴장으로만 몰아붙이면 숨이 막힌다. 그러나 너무 헤이해지면 낙오하고 만다. 긴장은 성장하고 확장할 때다. 활기차게 움직일 때다. 그러나 긴장이 심하면 심할수록 피로가 심해지고 피로가 한계를 넘으면 병이 난다. 노이로제가 되거나 위궤양이 되거나 한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 다 같이 릴랙스(realax)하는 것이 필요하다.

놀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은 일부러 심신의 이완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두 가지의 밸런스가 필요하다. 경영 또한 마찬가지다. 경영은 안정→불안정→안정→불안정을 되풀이 하면서 성장해 간다. 어느 기간 동안 안정이 계속되면 스스로 그 안정을 깨고 불안정을 만들어 낸다. 확장할 때인 것이다. 그러나 확장을 계속하면 반드시 무리가 온다. 무리가 와 불안정이 너무 오래 계속되면 복원력(復元力)이 없어지므로 될 수 있는 한 빠른 기간 안에 안정을 되찾게 한다. 이것이 경영의 요체인 것이다. 인간 누구에게나 자기 특유의 생체(生體)의 주기성(週期性)이 있어 잘 되어 갈 때와 안 되어 갈 때 운이 강할 때와 약할 때가 있다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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