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보며] 이혜정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문학박사

“파업도 안하고 말도 더 잘 들어”…대기업이 수천억씩 쏟아붓는 ‘이것’,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M 신문사의 머리기사이다. 문구가 너무나 살벌해 ‘이것’이 도대체 뭔가하고 봤더니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였다. 인류는 윤택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혹은 결핍된 뭔가를 보충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컴퓨터가 그러했고 스마트폰이 그러했으며 인공지능 또한 그러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범용화되었을 때는 의심 없이 문명의 이기(利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탑재된 챗GPT를 보고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고 휴머노이드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드디어 AI와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의 시기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필자는 중어중문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진화된 번역기와 챗GPT가 범용화된 현재, 대학에서 중국어 학습의 당위성을 피력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게다가 최근 S사에서 개발한 스마트폰에 실시간 통·번역 기능이 탑재되었다는 기사를 본 뒤로는 고민이 더욱 커졌다. 학생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수업에 참여시킬 수 있을까? 장고의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은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며 스스로 세뇌하면서 초연하게 버텨보자는 거였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번 학기 강의는 번역기를 사용할 거고, 번역기가 초벌 번역을 하면 우리 인간은 상위 작업인 포스트 에디팅을 하자고 제안했다. 기계의 허점을 찾아 인간의 능력이 좀 더 우월함을 인식시켜 주자는 미명 아래 버티기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기술이 한층 고도화되면 인공지능의 인식능력은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고 그 순간 비교우위의 날도 끝이 나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열패감은 여기서 시작이다.

인간의 형태를 한 인공지능 로봇 휴머노이드! 개발찬성론자는 한창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노동력 부족에 대비할 수 있다느니, 노인 또는 장애인에게 정서적 지원이 가능하고, 의료, 교육, 서비스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도 있으며, 인간 대신 위험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느니 하는 등 갖가지 이점들을 내세워 휴머노이드의 긍정적인 면을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다.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아마존, 인텔 등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도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맞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조력자로 여러 방면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것은 자명하다. 문제는 그 역할이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는 거다.

“파업도 안하고 말도 더 잘 들어”라는 기사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들이 이렇게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것은 인류에게 또 다른 문명의 이기를 제공하겠다는 순수한 의도만 깔린 것은 아니다. 이 말에는 노동권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인간을 수단화하는 폭압적 태도가 담겨있다. 이 제목의 맥락 속에서라면 기업주는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선택 상황에서 말 잘 듣고 파업도 하지 않으며 묵묵히 기업의 수익 창출을 위해 복무해 줄 휴머노이드를 선택할 것이다. 인간은 겉으로는 AI에게 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또 다른 인간에게 버림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된다. 휴머노이드의 출현이 인간에게 유토피아를 선사할 것인가, 디스토피아를 선사할 것인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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